성공의 길

핸드백 대신 서류가방을 들라

2000 머털도사 2007. 11. 14. 13:54

“핸드백 대신 서류가방을 들라”

 

‘여직원’ 차별 겪으며 ‘남성화의 길’ 걸은 이행희 한국코닝 사장

‘열심히 재밌게 일하자’를 모토로 일과 운동에 맹렬한 에너지 쏟아

 

“언니, 뭐해. 커버 벗겨줘.” 어이가 없어 쳐다보는 이행희(41) 사장에게 그는 한마디를 더 보탰다. “여긴 언니들 옷 잘 입히나봐~.”

 

이 사장한테서 들은 ‘여성 기업인이었기에 겪어야 했던 별별 웃지 못할 일들’ 가운데 압권은 골프장에서 캐디로 오인받은 해프닝이었다. 한국코닝 사장에 오른 게 지난해 1월이었으니 그리 오래되지 않은 옛일이다. “그날 골프를 치게 된 팀에 얼굴을 모르는 이가 한분 있었거든요. 공교롭게 그분이 먼저 와서 저와 대면하는 바람에….” 이 사장을 캐디로 잘못 알아본 채 골프채 커버를 벗겨달라는 주문도 모자라 옷차림 품평까지 곁들인 그가 경기자들이 다 모인 뒤에 얼마나 곤혹스러웠을지 상상해보며 한참 웃었다.

 

역사학을 떠나 마케팅 전선으로

 

“제 이름에 ‘희’가 붙어 있어도 직접 만나지 않은 이들은 여자 이름을 가진 남자이겠거니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국내 기업만큼이나 다국적 기업의 한국 법인에서도 여성 최고경영자(CEO)를 찾아보기 어려운 현실에, 남성적이고 보수적인 이미지의 코닝과 여성 CEO는 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기 때문일 것이란 설명이다.

 

학부(숙명여대) 땐 역사학을 전공한 걸로 돼 있던데, 지금 하시는 일과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그렇죠? 처음엔 전공 분야와 비슷한 곳에 들어갔습니다.” 대학을 졸업하던 1986년 2월 그의 첫 일자리는 문화재관리국 연구원이었다. 전공과 관련이 있을 뿐 아니라 고상한 자리인 듯한데, 그는 1년 만에 이 자리를 그만둔다. “전문위원을 도와 고문서를 관리하는 일이었는데, ‘이건 아니다!’ 싶더라고요. 몇 천년 지난 책들을 뒤지면서 모르는 한자 나오면 옥편 찾아보고…. 오래 못하겠더군요. 눈도 아프고.” 전문위원 자리에 오르려면 한 10년은 기다려야 할 것 같은 아득함도 견디기 어려웠다.

 

첫 직장을 떠나기로 맘먹은 뒤 그는 따로 공부를 시작했다. 점심을 거른 채 사무실(종로1가)에서 종로3가 학원까지 뛰어가 영어 공부를 하고, 저녁엔 다시 ‘뉴타자학원’으로 달려가 타자 기술과 무역 실무를 익히는 식이었다. 무역 실무를 배운 덕에 우연찮게 외국계 무역회사인 ‘AME’에서 일하게 됐고, 이어 헤드헌팅 회사를 통해 한국코닝과 인연을 맺게 됐다. 꼭 외국계 기업에서 일하겠다고 작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는 여대생들이 국내 기업에 취직하는 건 하늘의 별따기였다고.

 

한국코닝에서의 이력을 보면 주로 마케팅 부문에서 일했는데, 처음부터 그랬던가요?

 

“아니죠. 여자 직원이 마케팅을 맡는 일은 전무하다시피 했습니다. 처음엔 무역 및 고객 서비스 업무를 맡다가 세일즈와 마케팅이 회사의 메인(주 업무)이란 점을 파악한 뒤부터 나름대로 준비를 했습니다. 6만개에 이르는 코닝 제품 가운데 유리제품군의 네 자리 코드와 제품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길거리를 오갈 때 자동차 번호판을 보면서 (코드를) 외울 정도로 열심히 했습니다.”

 

한국코닝의 모체인 미국계 다국적 기업 코닝그룹은 소비자들에게 낯선 회사다. 주력 분야가 액정디스플레이(LCD), 통신용 광섬유, 자동차 배기가스 정화장치 등 도무지 눈에 띄지 않는 첨단 소재품들이기 때문이다. 에디슨의 첫 전구 유리벌브를 만든 150년 전통의 기업, 흑백 및 컬러 TV용 유리 첫 개발과 통신용 광섬유의 첫 상용화를 이뤄낸 첨단 기술력 또한 일반 소비자들과는 거리가 먼 기록이다. 친근감을 느끼게 할 대목을 굳이 들자면 생명공학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쌓은 황우석 박사 연구실의 세포배양 기구(유리·플라스틱)가 코닝 제품이란 사실 정도일까.

 

국내 소비자들한테 그나마 알려진 것이라곤 단단하고 가벼운 ‘코닝’ 유리그릇 정도인데, 그나마 이 사업부문은 다른 회사에 팔려나간 지 이미 오래다. 지난 1989년 회사 이름을 ‘코닝유리’에서 ‘코닝그룹’으로 바꾸면서 창업(1851) 때부터 이어온 간판사업인 그릇과 전구유리 부문을 완전히 떼낸 것. 그런데도 이 사장의 명함을 보고는 ‘그릇회사 사장’으로 아는 이들이 있다고 한다. 이렇게 소비자들에게는 낯설고, 코닝을 잘 아는 거래 업체들에게는 공학도 출신의 남자들에게나 어울리는 회사여서 CEO는 물론 마케팅 책임자로서도 여성의 존재는 뜻밖으로 여겨지기 일쑤다.

 

그가 한국코닝 입사 뒤 2년 만에 어렵사리 영업 부문에서 일하게 된 뒤에 겪은 일화 한 토막. 경기도 안산에 있는 어느 거래업체에 공급한 유리 제품에 결함이 생겼다. 그가 담당 팀장으로 공장을 방문했음에도 거래업체쪽에선 막무가내로 ‘책임질 수 있는 미국 사람 오라’며 그를 상대조차 하지 않으려 했다. 이 사장은 “돌아오는 차 안에서 많이 울었다”며 “그 다음부턴 제품 지식을 면밀하게 파악하고 ‘남성화’의 길을 걸었다”고 말했다. “(인터뷰 때 배석한 정소영 과장을 가리키며) 한번은 핸드백을 메고 나가기에 (여자로 여겨지지 않게) 서류 가방을 들고 나가라고 한 일도 있습니다.”

 

열정만이 아닌 ‘즐김’의 생활

 

이 사장은 ‘열심히, 재밌게 일하자’를 모토로 삼고 있다. 그동안의 이력으로 ‘열심히’는 충분히 납득할 수 있겠는데, 생업을 정말 ‘재밌게’ 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래도 재밌게 ‘살고’(‘일하고’가 아닌) 있기는 한 것 같다. 20대 시절에 시작한 골프에 이어 인라인스케이트를 배우고, 스키는 물론 수상스키까지 즐기는 등 갖가지 스포츠로 주말을 보낸다고 한다. 지난해부턴 새로운 운동 종목을 해마다 한 가지씩 추가로 배워나갈 계획을 세워두기도 했다.

 

한국코닝에서 마케팅 과장·차장으로 일하던 시절 고려대 경영학 석사·숙대 경영학 박사 과정을 마칠 정도의 맹렬한 에너지 또한 열정만이 아닌 ‘즐김’에서 나온 게 아닐까 싶었다. 2001년부터 숙대 경영학부에서 강의를 맡고 있는 그는 지난해 저성장 시대의 마케팅 전략을 소개한 <미니스커트 마케팅>(도서출판 서울경제경영)을 출간하기도 했다.

 

 

(출처) 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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