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의 길

SK 최연소 이사 윤 송이 박사

2000 머털도사 2007. 11. 14. 13:46

SK 최연소 이사 윤 송이 박사 

 

“얼짱도 엄연한 한 가지 ‘성공의 길”

 

서울 무교동 SK빌딩 11층 SK텔레콤 CI(Communication Intelligence) TF팀장 방에서 윤 박사를 만났다.

 

-일부 여성단체들은 미스코리아 대회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지요. 그러나 미모가 여성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의 하나라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여자는 예쁘면 최고라고 말하는 사람이 남성쪽에만 있는 게 아니라 여성 쪽에도 있어요. 여권이 신장되고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 커지면서 이런 인식에도 어느 정도 변화가 생겼지만. 실력과 노력으로 사회적 성취를 이룬 여성으로서 ‘여자는 예쁘면 된다’는 사회 일각의 고정관념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습니까.

 

“재미있는 질문인데요. 커리어 패스(Career path)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커리어 패스’는 우리말로 ‘출세의 길’ ‘성공의 길’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남성은 요리도 못하고 빨래도 못하고 애를 못봐도 싸움만 잘하면 장땡이라고 할 수도 있지요. 여성도 마찬가지예요. 다른 것을 잘하지 못해도 예쁘기만 하면 시집 잘 가서 행복하게 사는 커리어 패스가 역사적으로 검증됐습니다. 여성은 호모지너스(homogenous·동질의) 집단이 아닙니다. 여자의 미모는 한 가지 성공의 길일 뿐입니다. 얼굴 못생기고 아무것도 못해도 바이올린 연주만 잘하면 되더라는 여성도 있는 거죠. 골프만 잘 쳐도 성공하는 여성도 있구요. 여성을 단순하게 규정하려는 시도는 잘못이에요. 여자 안에서도 다양하니까. 남자 안에서 다양한 것과 마찬가지로…”

 

과기대 수석졸업, 만 24세에 MIT 박사

 

여기서 잠깐 윤 박사의 커리어 패스를 살펴보자. 서울 과학고를 2년 만에 조기졸업했다. 한국과기대(KAIST)를 수석졸업한 뒤 미국 MIT 미디어랩에서 3년6개월 만에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만24세의 나이였다. 논문주제는 ‘감성을 가진 합성캐릭터(Affective synthetic character).’ 합성캐릭터는 인간과 기계의 대화를 중재하는 디지털 존재다. 그는 이 논문으로 미국컴퓨터공학협회(ACM)가 매년 전세계에서 단 한 명을 골라 주는 최우수학생 논문상을 받았다.

 

미디어랩에 처음 갔을 때 박사과정 3년차의 미국 남학생이 자신을 소개하며 윤 박사에게 필요하면 도움을 요청하라고 말했다. 윤 박사가 학위를 받고 귀국해 지난해 와이더댄닷컴 이사로 근무할 때 그 남학생으로부터 곧 박사학위를 받는다는 이메일이 왔다. 윤 박사가 빠른 것일 뿐 그 남학생이 늦은 건 아니다. 보통의 경우 학위를 받는 데 6~8년이 걸린다.

 

MIT 미디어랩에서 윤 박사는 6명과 팀을 이뤄 로스앤젤레스 전시회에 출품하는 합성캐릭터 프로젝트를 맡은 적이 있다. 그녀는 석달 동안 하루 20시간씩 작업을 강행했다.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마감일에 맞춰 프로젝트를 완성한 날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갔다. 수면부족과 과로가 원인이었다. 그녀는 서울에서 급히 날아온 동생의 간호를 받으며 일주일 동안 잠만 잤다.

 

길눈 어두운 ‘과기대의 전설’

 

영일여중을 수석졸업하고 서울과학고에 진학했다. 과학고에 들어가면서 그녀의 탐구활동은 날개를 달았다.  

 

“중학교에서는 학생마다 소질과 관심이 다 다르잖아요. 과학고에서는 저와 궁금해하는 대목이 일치하는 애들이 많았어요. 그런 점이 참 좋았죠. 말이 잘 통하지요. 이거 한번 해보자 하면 함께 탐구하는 분위기였죠. 우리가 영재라고 생각해본 적은 별로 없지만 같이 실험해볼 수 있는 동료들이 한꺼번에 생겨 너무 좋았어요. 그런 면에서 과학고는 아주 훌륭한 교육기관입니다.”  

 

그녀가 미국 MIT에서 공부할 때 SBS에서 ‘카이스트’란 드라마를 방영했다. 작가가 대전 과기대에 내려와 학생들을 인터뷰하며 소재를 취재했다. 과기대에서 윤 박사는 전설로 남아 있었다. ‘카이스트’에서 주인공 혜성(이나영)이 윤 박사의 전설을 재현했다. 윤송이 학생은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으려다 불현듯 실험문제의 해답 아이디어가 떠오르자 식판을 놓고 실험실로 가버렸다. 함께 밥을 먹으려던 학우들은 황당했다. 드라마에서는 조금 과장되게 윤송이 학생이 식판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연출했다.  

 

그녀는 길눈이 어두워 지도를 그려 그것을 보면서 강의동과 기숙사를 찾아다녔다. 동네에는 간판이 있어 길 찾기가 쉬웠지만 대학교엔 간판 없는 건물들만 있었다. 나무 몇 개 지나 오른쪽으로 가면 무슨 수업하는 데가 있고…. 이런 식으로 지도를 그려 한달 동안 갖고 다녔다. 목동 뒷산에서처럼. 드라마 ‘카이스트’에선 항상 길을 못 찾고 헤매다 어리뜩하게 웃는 학생으로 묘사됐다.

 

여동생도 서울대 분자생물학과 수석졸업

 

윤 박사는 고등학교 때 수학과 물리 과목을 좋아해 학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다. 그러다 뇌의 연구로 이어졌다. 동생은 고등학교 때 생물과 화학을 좋아해 학부에서 분자생물학을 전공했다. 지금은 분자생물 중에서도 뉴로사이언스(신경과학)와 페르몬(곤충의 의사소통에 쓰이는 물질)을 연구하고 있다. 각기 다른 과목을 좋아했는데 뇌로 수렴된 것이 신기하다고 윤 박사는 말한다. 그녀는 어떤 아이디어에 대해 동생의 코멘트를 듣고 싶으면 시도 때도 없이 미국으로 국제전화를 걸어, 동생으로부터 “지금 새벽 4시”라는 핀잔도 여러번 들었다.

 

“나는 공학도라서 여러 가지 가설을 세워 지능시스템을 만들지요. 기억이나 연상을 이렇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접근합니다. 가설에 맞춰 실제 시스템을 만들어 잘 작동하면 공학자로서 새로운 시스템을 개발한 것이지요. 동생은 자연과학을 하니까 내가 연구하려는 것에 대해 실제로 동물의 바이올로지컬 시스템에 그런 게 있다고 이야기하곤 해요. 재미있죠.”

 

-동아일보(2003년 7월18일)에 아버지가 세상 사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는 칼럼을 쓴 적이 있더군요. 아버지가 전수해준 세상 사는 법을 독자들과 공유하면 어떻겠습니까.

 

“겸손하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항상 바르게 살라는 말씀도 하셨어요.”

 

-어머니는 어떤 가르침을 주었나요.

 

“엄마는 항상 사람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대하라고 하시지요. 누구에게나 다 배울 게 있는 거래요. 사람마다 관점과 처한 입장이 다르다는 말씀도 하셨어요. 나한테 중요한 거랑 상대방한테 중요한 거랑 다르니까 처음부터 ‘그게 아니야’라고 하지 말고 다른 것 속에서 뭔가를 찾아보라는 말씀이십니다.”

 

‘익스플로이테이션’과 ‘익스플로레이션’  

 

-우리 사회가 너무도 여러 갈래로 찢겨지다 보니 의견이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경향이 있어요. 지식인들도 마찬가지예요. 특히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을 감정적으로 미워하지요. 광화문에서 열린 찬탄집회와 반탄집회에서도 극렬한 언사들이 나오잖아요.

 

“연관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개체의 학습이론에 익스플로이테이션(exploitation)과 익스플로레이션(exploration)이라는 개념이 있어요.”

 

익스플로이테이션은 이용, 익스플로레이션은 탐험으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아기개미가 음식을 가지러 갈 때 어디에 맛있는 게 있을지를 배워야 하잖아요. 어릴 때는 지식이 없기 때문에 되도록 많이 돌아다녀요. 오늘은 여기 가봤는데 맛있는 걸 찾았어. 다음에는 다른 델 가봐야지. 이렇게 가능한 옵션들을 탐험하는 게 익스플로레이션입니다. 익스플로이테이션은 10군데를 가봤더니 2번 길로 가는 게 가장 좋았으니까 앞으로 2번 길로 가기로 마음먹는 태도지요. 내가 알고 있는 것 중에서 베스트 날리지(Best knowledge)를 써먹는 것이 익스플로이테이션이죠. 탐험심이 뛰어난 개미라면 10개의 길을 가보고 나서 또 다른 뭔가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 11번째, 12번째 길을 찾아가겠죠. 익스플로레이션과 익스플로이테이션이 조화를 이뤄야 학습의 효율성을 높이고 개체와 집단의 발전을 이룰 수 있습니다. 두뇌 연구할 때 자주 사용하는 개념이죠.”

 

나 같은 사람은 익스플로이테이션할 나이이군요.

 

“위원님은 아직 젊으시잖아요. 그렇지만 점점 익스플로이테이션의 비율이 높아지겠지요. 개체가 나이 들고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이면 계속 익스플로레이션을 하는 것이 별로 효율적이지 않아요. 왜냐하면 10개를 해보고 좋은 것을 하나 발견했다면 다음에 몇 개 더 해보더라도 더 좋은 것을 찾을 확률이 낮거든요. 익스플로레이션은 모 아니면 도, 때론 아주 꽝이 될 수도 있는 거죠.

 

사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익스플로레이션과 익스플로이테이션은 항상 같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길을 발견하고 발전할 수 있습니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눈과 귀를 막아버리는 행위지요.

 

익스플로이테이션으로 안정된 생활을 끌어가는 것도 중요하고 익스플로레이션으로 새로운 길을 찾아나서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런 게 사회 안에서 다양성으로 나타나야죠. 모두 다 익스플로레이션만 한다면 언젠가 소진될 겁니다. 사회발전이 정지되는 거죠. 그렇다고 해서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익스플로이테이션만 하는 것도 위험합니다.

 

어떤 패스(path)든 내가 아는 것만 옳고 다른 것은 틀리다는 태도로는 사회발전을 도모하기 어렵지요. 항상 익스플로레이션이 일어나는 사회가 건강하고 그런 걸 통해서 누군가는 익스플로이테이션을 할 수 있는 거죠. 익스플로이테이션과 익스플로레이션이 서로 존중할 때 다양성을 유지하면서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고 발전할 수 있습니다.”

 

-보수와 진보 비슷한 얘기 같기도 하고 조금 다른 것 같기도 합니다.

 

“보수·진보하고는 달라요. 내가 아는 게 전부고 내가 아는 게 정답이라고 얘기하는 게 익스플로이테이션입니다. 익스플로레이션의 경우 기존의 것은 다 아니고 이거에 답이 있을 거라고 얘기할 수는 없죠. 더 좋은 것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정도지요. 새로운 것이 더 있지 않을까 물어보는 것은 필요하죠.”

 

-어느 인터뷰에서 사고의 리더(Thought leader)가 되겠다는 말을 했던데 무슨 의미입니까.

 

“어릴 때는 늘 작은 호롱불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는데요. 조금 앞에서 보고 내가 본 걸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줄 수 있는 역할을 말하는 거죠.”  

 

-윤 박사가 태스크포스팀장을 맡고 있는 통신지능이란 뭡니까.

 

“통신서비스가 점점 복잡해지잖아요. 휴대용 단말기가 여러 가지 네트워크에 연결돼 다양한 서비스를 받게 됩니다. 무선 인터넷 하나만 해도 고객들이 어려움을 느낍니다. 정보가 너무 많기 때문에 자신에게 맞는 정보를 찾으러 가기 전에 지레 포기해버리는 일이 많지요. 서비스 사업자 입장에서 고객이 어떤 시간에 어디 있고, 개인 취향은 무엇인지 등등 고객의 컨텍스트를 알고 있다가 그 고객에게 맞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겁니다. 그런 것을 가능하게 하는 인프라 또는 서비스 제공방식을 통신지능이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최근 본 영화, ‘태극기…’

 

-6·25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나요.

 

“주변 사람들과 이 영화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영화 프로덕션 면에서는 마무리나 빛의 처리, 카메라 각도 같은 영상기법이 정말 수려하고 잘됐다고 공통적으로 말했지요. 완성도가 높은 영화입니다. 내용 면에서는 서로 갈리더라고요. 어떤 사람은 전쟁의 비극, 전쟁에 대한 경각심을 느꼈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가족애는 사상을 뛰어넘는 가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나는 그 영화를 보면서 개인과 집단의 갈등을 생각했습니다.

 

형 진태(장동건)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적입니다. 진태에겐 가족이 가장 소중하고 그의 첫 번째 가치는 동생을 지키는 것이죠. 집단의 프리즘으로 보면 이 사람은 국군 쪽에서 싸우다 갑자기 180도로 바뀌어 공산군의 선두에 섭니다. 맨마지막엔 다시 180도 전환해 공산군에 총을 겨눕니다. 말도 안되게 휙휙 사상이 바뀌지만 개인의 입장에서는 일관적이거든요. 조직의 논리와 개인의 논리가 극명하게 상충되는 현상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와 윤 박사가 연구하는 통신지능이 접합되는 부분은 없습니까.

 

“영화는 사람들이 좋아하고 즐기는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입니다. 모바일 플랫폼을 통해 2시간짜리 영화를 보여줄 수는 없겠지만 영화를 즐겁게 감상할 수 있는 툴(tool)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것과 관련한 서비스로 발전할 수 있겠죠.”  

 

-국회의원이 좋은 자리거든요. 보좌관 비서관이 여럿이고 기사가 운전하는 자동차에 의원 사무실이 나오고 여러 특권이 따릅니다. 이공계 출신이 국회에 진출하면 과학발전을 위해서도 예산 또는 정책적 측면에서 기여할 수 있을 겁니다. 쉽지 않은 기회를 거절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어요. 사회의 여러 구성원이 자기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사회가 건강합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사회에 가장 기여하는 거라 생각합니다. 정치는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닙니다.”  

 

-과학의 정치학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정치는 국운을 가르고 거의 모든 분야에 영향을 줍니다. 남녀의 사랑에도 정치가 영향을 미친다고 해요. 과학도 정치에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중국의 경우 이공계 출신들이 나라의 지도부를 구성해 경제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측면에서는 과학자들도 정치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생각해요. 정치는 매우 중요하고 잘해야 되지요. 과학자와 이공계 출신도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게임, 하는 것보다 만드는 게 더 좋아

 

-컴퓨터게임을 즐기는 편인가요.

 

“게임 하는 것보다 만드는 걸 더 좋아해요. 스토리 쓰고 캐릭터 만들고, 이러는 거 좋아해요.”  

 

-한국의 대기업에서 상무가 돼 이 정도 방을 차지하려면 최소한 내 정도 나이는 돼야지요. 상투적 질문 같지만 나이 많은 부하직원들 거느리기가 어떻습니까.

 

CI 팀원이 26명입니다. 그 안에서 누가 나이 많고 적은지 몰라요. 업무를 처리할 때는 전혀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대하거든요. 일 자체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고,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거든요. SK텔레콤의 분위기가 그래요. 여성사원도 아주 많습니다. 그러나 남녀 가리지 않고 아웃풋(산출)으로 평가합니다.”

 

이상형은 소신·철학 뚜렷한 사람  

 

결혼상대로 정해진 남자는 있습니까.

 

“아니요.”  

 

-아직도 열려 있어요?

 

“네.”  

 

-결혼할 생각이죠?

 

“꼭 해야겠다는 것도 아니고 꼭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없어요.”

-자연계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는 학생들이 대부분 의대로 진학합니다. 정부 지원을 받아 학교를 다닌 과학고 학생들도 의대를 지원하는 실정입니다. 그런가하면 서울대 공대생들이 대거 고시공부를 하는 판이라 고시망국론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개인을 탓할 게 아니라 사회시스템을 한번 돌아봐야 합니다. 개인의 입장에서 커리어 선택은 인생을 건 투자지요. 투자엔 두 가지 옵션이 있어요. 채권형과 주식형이 있습니다. 국공채는 절대로 망하지 않거든요. 주식형은 크게 망할 수도 있지만 크게 잘될 수도 있지요. 잘 선택해 열심히 하면 채권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국가경제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면 두 옵션의 기대치는 비슷해요. 기대치가 비슷하기 때문에 채권에 투자하는 사람도 있고 주식에 투자하는 사람도 있죠. 주식의 기대치가 채권보다 항상 높으면 모두 주식으로 몰리겠지요. 반대로 주식에 투자하면 거의 다 망하고 채권이 훨씬 낫다고 하면 다 채권으로 몰리겠지요. 지금이 비슷한 상황이라고 생각해요. 이공계에 다양한 커리어 패스가 존재하지만 주식과 비슷한 성질을 가졌죠. 빌 게이츠처럼 크게 성공할 수도 있고 평균보다 잘못될 수도 있지요.  

 

그러나 고시는 일단 패스하면 생활이 안정되지요. 국가시스템이 받쳐주기 때문에. 사회시스템이 주식형 커리어가 다양하게 자기 가치를 발휘하고 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밀어주지 못해 고시망국론이 생기는 겁니다. 학생들한테 장학금을 주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요. 그러나 커리어와 전공 선택은 단지 대학 4년을 보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생을 보고 선택하는 겁니다.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제시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해결책이 있을까요.

 

“이공계를 나온 사람들이 창출한 가치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금전적 보상뿐 아니라 사회적 존경을 포함하는 것이죠. 이런 기대치가 어느 정도 균형을 이뤄야 소질에 맞게 이공계를 가는 사람도 있고 고시를 보는 사람도 생겨나게 되겠죠.”

 

술은 얼마나 할까.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주종을 가리지 않고 한잔 받아놓고 제사를 지낸다.  

 

-폭탄주를 마셔봤어요?

 

2년 전 매킨지에 있을 때 일곱 잔까지 마셔본 적 있어요. 그런데 평소엔 잘 안 마셔요.”

 

-맛집 순례를 좋아하고 대식가라고 하던데 지금 보니까 아주 말랐군요.

 

“잘 모르겠는데요. 몸무게는 계속 그대로예요. 되게 오랫동안 변하지 않았어요.”

나이 어린 사람한테 사생활에 가까운 사항에 관해 미주알고주알 질문하자니 조금 쑥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윤 박사도 가끔 “그런 것도 인터뷰 기사에 들어가나요”라고 물었다.  

 

윤 박사를 인터뷰하면서 천재는 어떻게 길러지고 어떻게 공부했는가에 중점을 두었다. 그러나 독자들은 천재의 일상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을 것이다. 윤 박사는 시종 자신은 천재가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취미는 요리와 바이올린 연주

 

-요리할 줄 압니까.

 

“요리하는 거 되게 좋아해요.”  

 

윤 박사는 ‘되게’라는 부사를 빈번히 쓴다. ‘매우’ ‘몹시’ 정도의 뜻이다. 언어습관일 것이다.

 

“그림 그리는 걸 되게 좋아하거든요. 그림에는 정형이 없지요. 백지가 앞에 딱 놓이잖아요. 어떤 재료와 색깔로 디자인할 건가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림이 좋아요. 바이올린을 좋아하는 것도 비슷해요. 건반악기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지만 바이올린은 0.1mm만 달라도 소리가 다르게 나거든요. 10번 연주를 하면 10번 다 달라요. 비브라토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데 그런 느낌이 너무 좋아요. 요리도 마찬가지예요. 아무것도 없는 빈 냄비에서 뭔가를 만들어내는 거잖아요. 요리할 때마다 달라요. 소금을 한 스푼 더 넣느냐 덜 넣느냐, 참기름을 많이 넣느냐 조금 넣느냐에 따라 요리가 달라집니다.”  

 

-지금 삶이 만족스럽다고 생각하세요.

 

“글쎄요. 아마 모든 게 완벽하고 만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하는 거죠. 만약 내일 죽는다면 오늘 무슨 일을 할래, 내일 모레가 마지막이라면 어떤 일을 할래라고 잘 묻잖아요.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모르지만 저는 지금이랑 똑같을 것 같아요. 지금 하는 일을 계속 열심히 해야지요. 갑자기 안 하던 일을 할 수는 없잖아요. 항상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혹시 울어본 적 있습니까.

 

“많죠. 영화 보면서 슬픈 장면에서 잘 울어요. 3년 전에 외할머니 돌아가셨을 때도 울었어요. 가까운 사람을 잃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거든요. 어릴 때 무덤을 보거나 죽은 사람 얘기를 들으면 산 사람은 산 사람이고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할머니의 죽음을 통해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이 되는 트랜지션(transition)을 체험한 것이죠. 이런 게 죽음이구나. 그때 많이 울었어요.”  

 

-살다보면 좋아하는 인간형도 있고 싫어하는 인간형도 있을 수 있잖아요. 지금까지는 좋아하는 인간형에 대해서 말했는데 싫어하는 인간형도 말해보세요.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 제일 싫어요. 사람은 모두가 다릅니다. 생각과 관심사가 다르지요. 다르다는 걸 떳떳하게 인정하면 됩니다.”  

 

“한국을 인재들의 ‘집’으로 만들 것”

 

말이 빠른 편이다. 질문을 70개 가량 준비했고 즉석 보충질문을 많이 했는데도 질문 재고가 거의 바닥났다.  

 

11층 윤 박사 사무실에서 청계천 복원공사 하는 모습이 내다보였다. 썩은 하수구가 흐르던 청계천이 되살아나면 멋진 천변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을 것 같다. 윤 박사는 “사무실을 옮기고 나서 아직 창문 내다볼 시간이 없었다”고 말했다.  

 

-용돈은 주로 어디에 써요?

 

“친구들 만나 술 사고 밥 사고.”  

 

-옷 치장하는 데도 돈이 많이 들잖아요.

 

“옷 쇼핑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옷가게 가서 입어보고 벗어보고, 이런 거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관심의 차이죠. 사람에 따라서 다르지만. 이 바지는 정말 오래된 거 같다.”

 

휴일이라 윤 박사는 수수한 캐주얼 차림이다. 바지는 카이스트 2학년 때부터 입던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10년 된 바지다. 검정 티셔츠는 카이스트 3학년 때 엄마가 사준 것이다.

 

그녀는 “이 바지가 오래 된 것처럼 보이나요”라고 필자에게 물었다. 윤 박사가 입고 있으면 “10년짜리 낡은 옷도 방금 디자이너가 만든 옷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조금 아첨을 섞었다.

 

-미국을 마다하고 한국에 들어온 이유가 뭡니까.

 

“저는 편하게 살기보다는 보람을 느끼는 삶을 살고 싶어요. 궁극적으로는 나는 한국사람입니다. 한국에서 주인의식을 갖고 주인답게 일을 해 우리나라 발전에 기여하고 싶어요. 그래서 별로 고민하지 않고 한국에 와서 일하기로 결심했어요.”  

 

KBS 김동건의 ‘리얼토크’에 출연해서는 “왜 한국으로 돌아왔느냐”는 질문에 윤 박사는 ‘목수론’을 편 적이 있다.  

 

“미국엔 연구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고 남으라는 권유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한국을 일하고 싶은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인재들이 오고 싶어하는 집을 만들겠다는 거지요. 친구들과 의논해 이것을 ‘목수론’이라고 네이밍했어요.”  

 

윤 박사 같은 2%의 천재가 세상의 흐름을 바꿔놓는다는 말이 있다. 윤 박사는 2%가 아니라 0.2%에 속하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3시간 가깝게 ‘늙다리 선생’ 인터뷰어가 쉴 새 없이 던지는 질문에 성실히 답변해주었다.  

 

엘리베이터까지 마중나올 때 보니 굽 높은 신발을 신고 있었다. 중키였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힌 뒤 속기사 장혜경씨가 “젊은 처녀가 말을 아주 논리적으로 잘 한다”고 칭찬했다.

 

 

(출처) 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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