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물

앤드류 카네기

2000 머털도사 2007. 9. 10. 03:09

 

 

 

 

자선가의 길을 개척한 위대한 사업가 - 앤드류 카네기의 일과 사랑 

카네기(Andrew Carnegie, 1835∼1919년)는 사람의 일생을 2기로 나누어, 전기에는 부를 축적하고 후기에는 축적된 부를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으며, 실제로 이를 실천한 위대한 기업가였다. 1835년 스코틀랜드에서 수직공(手織工)의 아들로 태어나, 13세 되던 1848년 미국 펜실베니아 피츠버그로 가족과 함께 이주한 그는 어려서부터 방적공, 전신기사, 전보배달원, 기관사 조수 등 여러 직업에 종사했으며 정규교육은 거의 받지 못했다. 카네기는 가난하게 자란다는 것이 무엇인지 결코 잊지 않았다. 그는 4년 이상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기회를 갖지 못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부족한 것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평생을 숨돌릴 틈 없이 뛰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18세 되던 1853년 펜실베이니아의 철도회사에 입사하여 그 후 12년 동안 근무하면서 운송회사, 석유회사, 철도기기 제조회사 등에 투자하여 꽤 많은 돈을 벌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1865년 철강수요의 증대를 예견한 그는 다니던 철도회사를 그만두고, 독자적으로 철강업을 경영하다가 1872년 미국최초의 거대한 평로(平爐)를 갖춘 홈스테드 제강소를 설립했다.
1892년 카네기는 마침내 세계최대의 철강회사인 ‘카네기 철강회사’를 설립했는데, 이 회사는 미국 철강생산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당시 최대의 철강 트러스트였다.
1901년 카네기는 이 회사를 4억 4,000만 파운드에 모건계(系)의 제강회사와 합병하여 미국 철강시장의 65%를 지배하는 US스틸사를 탄생시켰다. 이 합병을 끝으로 카네기는 그의 신념이었던 ‘부를 축적하는 1기’를 마감하고 실업계에서 은퇴했다. 그리고 제2의 인생인 ‘축적된 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후기의 삶을 살기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앤드류 카네기는 33세이던 추운 겨울 어느 날, 스스로에 대한 각서를 썼다. 이것은 여느 기업가에게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행동으로, 부를 축적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인간적인 갈등과 양심을 잃지 않으려는 그의 신념의 고뇌를 엿볼 수 있다.
실제로 유년시절의 카네기에게 정신적인 지주였던 인물이 있었으니, 그것은 스코틀랜드의 전설적 영웅인 ‘월레스’와 시인 ‘로버트 번즈’이다. 특히, 번즈(Robert Burns)의 “오직 그대의 양심의 소리만을 두려워하라. 그리고 그에 따르라”는 말을 평생 좌우명으로 삼았던 그였기에 그러한 각서를 스스로에게 쓴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가 썼던 각서의 일부분을 소개하면 이렇다.
「인간은 우상을 갖고 있음에 틀림없다. 부의 축적은 가장 나쁜 종류의 우상숭배 가운데 하나다. 그 어떤 우상도 돈에 대한 숭배만큼 인간을 타락시키는 것은 없다. 나는 내가 관계하고 있는 일이면 그 무엇이든 전력투구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특히 나의 정신적 삶을 고양시키는 일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사업에 대한 생각에만 지나치게 집착하면, 이는 영원히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나 스스로를 타락시킬 것임에 틀림없다….」
카네기는 각서에 약속했던 것처럼 새로운 사업과 기술을 창조하는 데 전력투구 했으며 끊임없이 부를 창출했다. 그리고 그는 66세이던 1901년 실업계에서 은퇴했으며 나머지 약 18년간의 여생 동안 자신이 모은 돈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데 썼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 것이고 죽게 되면 결코 재산을 가지고 갈 수 없다. 그는 수십 년 동안 어떻게 하면 가장 최선의 방법으로 부를 나누어 줄 수 있을 것인지를 고심했다.
카네기는 잉여자산을 처분할 수 있는 방법은 3가지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 첫 번째는 자손들에게 물려주는 것이고 두 번째는 공익기관에 유증하는 것, 그리고 세 번째는 살아 있는 동안 소유자들이 직접 관리하여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다.
카네기는 첫 번째의 경우, 대부분 유산은 이것을 물려받은 사람들에게 불행을 초래한다고 말한다. 많은 유산은 의존성과 나약함 그리고 비창조적인 삶을 살게 하는 경향이 있으며 만약 당신이 자식의 진정한 행복을 생각한다면 많은 재산을 그들에게 물려주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내 자식에게 막대한 달러를 남겨주는 것은 곧 독이나 저주를 남겨주는 것과 같다.”고 경고하고 있다.
두 번째의 경우, 즉 공익을 위해 부를 유증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유증된 재산이 쓰여지는 것을 볼 때, 그 재산이 당신 사후에 당신이 바라던 대로 가장 효과적으로 이용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질 수 없다. 유증자가 바라던 진정한 목적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가 적지 않으며, 유증자의 진정한 소망이 무시되는 경우도 많다. 많은 경우, 유증된 재산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기념하는 기념물로 이용된다.”
카네기는 세 번째의 경우가 가장 적합하다고 확신했다. 경영수완과 무한한 창의력을 가진 부자들은 자신의 부를 나누어 주는 방법과 기술도 창안해 내야 한다. 만약 그들이 가난이 무엇인지 안다면 경험에 의해 가난한 사람들이 그것을 극복하고 일어설 수 있는 방법도 알고 있을 것이므로 가난한 자들을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부유한 사람은 자신에게 신탁된 재산을 관리하기 위해 소명을 받은 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러한 잉여재산을 지역사회를 위해 최상의 혜택을 주는 방식으로 관리해야 할 의무를 갖고 있다. 따라서 부자는 단순한 수탁자에 불과하며 이웃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대리자에 지나지 않는다.”
카네기는 가난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자선이라는 것이 어떠한 효과를 갖게 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어떻게 사용되어야 하는지 명백한 지식 없이 광범위하게 베풀어지는 단순한 자선에 대해 반대했다.
“오늘날 이른바 자선이라는 이름으로 쓰여지는 1,000달러 가운데 아마 950달러는 지혜롭지 못하게 사용되고 있다. 사실 그런 자선행위는 그것을 통해 치유 내지는 경감시키기를 바랬던 악, 그 자체를 오히려 유발하는 쪽으로 사용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카네기는 1913년까지 총 3억 3,200만 달러를 기부했다. 그리고 1919년 8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카네기주식회사’에 남아 있는 자신의 자선신탁재산 모두를 사회로 환원시켰다. 그 누구도 모든 것을 알 수 없으며,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다. 카네기는 자신의 한계에까지 뛰어들었던 위대한 기업가요, 자선가였다. 

'인 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톰 피터스  (0) 2007.09.10
진시황(秦始皇·BC 247~BC 210)  (0) 2007.09.10
소크라테스Socrates (BC 469~BC 399)  (0) 2007.09.10
셰익스피어  (0) 2007.09.10
상대성원리 아인슈타인  (0) 2007.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