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家長의 길>
* ‘삶이 두렵고 혼란스러운 것’은 우리가 “결과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삶”에는 “두려움”이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두려움으로 느껴지는 것”일 뿐이다.
* “삶의 목적”을 소위 ‘안정을 얻는 것’으로 안다면, 돈이 없음을 “불행”으로 볼 것이다. 그러나 무엇을 ‘급료’로 볼 것이며, 무엇을 ‘일의 목적’으로 볼 것이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의 관계는 180도 달라진다.
* “신의 급료”, 즉 우리가 ‘신을 위해 일할 때 받게 되는 급료’에는 물질적 행복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 들어 있다. 더불어 “물질적 안락” 역시 우리의 것이 된다.
* 어느 누구든, “신의 급료”가 주는 “영적 평온”을 일단 한번 누리고 나면,
우리는 더 이상 “물질적 안락”에 연연하지 않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심지어 “가족의 물질적 안락”까지도 더 이상 우리의 “관심”을 끌지 않을 것이다.
* 일단 “우리가 신의 의식까지 올라서게 된다면”, 우리는 “우리가 책임져야 할 다른 사람의 영혼이란 없다는 것“과, 모든 영혼이 평온하게 살길 바라는 건 칭찬받을 일이긴 하나,
“각자의 영혼은 순간마다 자기 나름의 운명을 선택”해야 하고,
또 실제로 “선택하고 있다”는 걸 이해하고 깨닫게 될 것이다.
* 물론 남을 고의로 불행에 빠뜨리거나, 자신에게 의존해야 하는 사람들,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 그렇게 하도록 자신이 선택하고,
만들어 놓은 인연자들을 “무시”하는 것 역시 똑같이 “온당치 못한 짓”임이 명백하다.
* 그러나 우리가 할 일은 “그들을 자립하게 만드는 것”이다.
* “나 없이도 살아가는 법”을 가능한 한 빨리, 완벽하게 “가르치는 것”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 “나를 필요”로 하는 한,
결코 그들을 “축복”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그들을 진실로 축복하는 것”은 오직 “그들이 나를 불필요한 존재로 느낄 때” 이다.
* 같은 의미로 “신의 입장에서 더없이 기뿐 순간”은,
우리가 “신이 전혀 필요하지 않다”고 깨닫는 바로 그 순간이다.
* 부모로서, 배우자로서, 우리는 자신의 사랑을 꽉 붙들어 매는 “아교풀”로 만들지 말고,
처음에는 끌어 당겼다가, 돌아서면 반발하는 “자석”이 되어야 한다.
* 우리에게 다가온 사람들이, 살아 남으려면 우리를 꽉 붙들어야 한다고 믿는 일이 생기면,
이것은 “진리”에서 멀어지는 것이요, 다른 사람에게 “해로움”이 되는 것이다.
* 사랑하는 이들을 “사랑으로 세상에 내 보내라!”,
* 그들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확실히 체험하게 하라!
이렇게 할 때야 비로소 우리는 그들을 “진정한 ‘사랑’을 하는 것”이 된다.
* 우리는 얼마나 “오랫동안 삶을 살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지금 이 순간 그것에 얼마나 몰두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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