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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가와 이에야스외

2000 머털도사 2007. 9. 10. 02:53
도쿠가와 이에야스
●오다노부나가(織田信長)
1549년 아버지 노부히데[信秀]의 뒤를 이어 오와리국[尾張國: 愛知縣]의 태수가 되고, 이웃의 여러 제후를 평정하여 무명(武名)을 떨쳤다. 1562년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와 동맹을 맺고, 1568년에는 아시카가 요시아키[足利義昭]가 막부(幕府)의 회복을 청해 왔으므로 이를 기회로 삼아 교토[京都]를 진정하고 막부를 재건해 실권을 장악하였다. 1573년에는 아시카가를 교토에서 추방함으로써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를 단절시켰다. 그동안 여러 곳에서 반란이 일어나 이를 평정하였으나 혼노사[本能寺]에서 부하인 아케치 미쓰히데[明智光秀]의 모반 ·습격을 받고 자살하였다. 그는 장기간에 걸친 전국전란의 시대에 통일의 서광을 비추어 준 전제무장(專制武將)으로 주목할 만한 여러 정책을 과감하게 실시하였다. 구체제 ·구관습의 타파, 새 인물의 등용, 금은 광산의 경영, 화폐의 주조, 도로 ·교량의 정비, 관소(關所: 검문소)의 폐지 등 혁신적인 정책으로 새 시대의 도래에 대응하였다. 이것을 기반으로 한 천하통일의 위업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계승되었다. 
●도요토미히데요시(豊臣秀吉)
오와리국[尾張國:愛知縣] 출생. 하급무사인 기노시타 야우에몬[木下彌右衛門]의 아들이다. 젊어서는 기노시타 도키치로[木下藤吉郞], 후에는 하시바 히데요시[羽柴秀吉]라고 하였다가, 다조대신[太政大臣], 간파쿠[關白]가 되어 도요토미라는 성을 썼다. 1558년 이후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의 휘하에서 점차 두각을 나타내어 중용되어 오던 중, 아케치 미쓰히데[明智光秀]의 모반으로 웅지(雄志)를 펴지 못하고 혼노사[本能寺]에서 죽은 오다 노부나가의 원수를 갚음과 동시에 그 뒤를 이어 천하통일을 이룩하였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그가 취한 최초의 행동은 그때까지 되풀이되던 왜구의 노략질을 국가적 규모로 확대한 임진왜란을 일으킨 것이다. 나고야[名古屋]에 지휘소를 차린 그는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로 하여금 1만 8,000명을 거느리고 조선을 침략하게 하였다. 조선은 처음에 패배하였으나 전열을 정비한 관군과 의병 및 수군의 활약으로 왜구를 모두 퇴각시켰다. 이 전란으로 조선은 귀중한 문화재가 소실되었음은 물론이거니와, 노략질 당했고, 조선의 도공(陶工)을 납치한 일본은 도자기 문화를 이룩하는 터전을 마련하였다
●도꾸가와이에야스 (德川家康)
아명 다케치요[竹千代]. 미카와[三河]의 오카자키[岡崎] 성주 마쓰다이라 히로타다[松平廣忠]의 장남.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와 동맹을 맺고 그의 힘을 빌려 스루가[駿河] ·도토미[遠江] ·미카와를 영유함으로써 동해 지방에 일대세력을 구축하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죽자, 1603년 세키가하라[關ケ原]전투에서 그의 지지세력을 제거하고 지방 제후를 압도하여 일본 전역의 실권을 장악하였다. 같은 해 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이 되고 에도에 막부를 개설, 패자(覇者)로서의 지위를 합법화하였다. 1614∼1615년 두 차례에 걸쳐 오사카[大阪]전투를 일으켜 히데요시의 아들 히데요리[秀賴]를 중심으로 한 도요토미의 잔당을 완전히 멸망시켜 대망의 천하통일을 완성하였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뒤를 이어 여러 가지 정책을 수행하여 일본 근세 봉건제사회를 확립하였다.
오다노부나가
이사람은 그야말로 파격적이라고 할수있습니다. 그전에는 일본에 그와 같은 
사람은 없었죠. 일본역사에 가장많은 영향을 끼친사람중에 한명입니다만.
이사람은 기존의 상식에 크게 매이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어릴적에는 하도 
기행(여행이 아닙니다. 이상한 행동을말합니다.-_-)을 많이 해서 멍청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습니다. 그때문에 가문의 가신들이 가문의장례를 걱정해서 그를
몰아내고 동생을 영주로 내세울려는 시도까지하죠.
그러나 아버지의 급사로인해(복상사했다는 말도있습니다.-_-)갑작스래 가독을 승계하게 되고 그때부터 그전과는 전혀다른 모습을 보이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돌출행동을 많이 했습니다.
그자 본격적으로 주목받고 가신들에게 영주로 인정받은것은 오케하자마전투에서
대승을 거두면서인데요.당시 수적열세를 딛고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게 되면서
일약 주목을 받게 됩니다. 이때에도 상식을 뒤업는 행동을 하면서 승리를 거둡니다. 
적군은 오다군이 농성을 할거라고 보고 안심하고있었는데 뒤통수를 갈겨버리죠.
그이후에는 다른영주들과는 달리 영토내에서의 상인들의 자유로운 왕래를 허용하고 철저히 능력에따라 가신들을 받아들이는등 기존의 영주들과는 다른사고방식을 보여주죠.
그가 했던업적중에 가장 유명한것은 철포대의 집단운용이었는데요. 철포란 임진왜란때 일본군이 사용했던 조총을 말합니다. 당시 일본 영주들은 철포를 쓰고있기는
했지만 집단운용은 안하고 여러 부대에 분산시켜쓰거나 농성전에서만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노부나가는 이를 뒤집어버리죠. 그는 철포들을 모두 모아서 집단운용하는 방법을 사용하는 방법을 사용했고 나가시노전투에서 일본최강의 기마군단을
보유하고있던 다케다가문의 군대를 괴멸시켜버립니다.
그이후 명실상부하게 일본 최대의 다이묘가 되죠.
그는 혁신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영주였고 공을 세운부하들에게는 확실한 은공을
내리는 사람이었지만 적에대헤서는 너무나 잔인한데다가 부하들에게도 가혹하게 
대했습니다. 스스로 제육천의 마왕이라고 칭하고 천하경영의 방식으로 천하포무
(무력통치를 의미합니다.)를 내세웠을 정도였죠.
이때문에 엄청난 악명을 얻게되고 부하들조차 그를 두려워하게 되죠. 그로인해
가장신임하는 부하중에 하나였던 아케치 미쓰히데가 일으킨 모반으로인해
천하통일을 눈앞에두고 최후를 맞게 됩니다. 
적은 혼노지에 있다는 말이 여기서 나왔죠.-_-얄굿게도 이말을 한사람이 노부나가가 아니라 반란을 일으킨 미쓰히데였죠-_-
도요토미 히데요시
풍신수길로 더알려져 있죠. 임진왜란의 원흉이기도 합니다만.
이사람은 일본사람들에게 입지전적인 인물의 대표적인 사람으로 인식되어
있습니다. 생김새때문에 원숭이라는 별명을 가지고있죠. 원래는 "기노시타 도키치로' 에서 "하시바 히데요시'였다가 도요토미 히데요시로 개명합니다.
원래는 오다가문의 하급무사의 아들이었는데 젊어서 여러곳을 많이 유랑했고 
그과정에서 많은 직업을 두루 거치게 됩니다. 
그과정에서 오다노부나가에의해 발탁당하게 되죠. 처음에는 말단직을 수여받습
니다만. 그뛰어난 말발과 잔머리 그리고 주위사람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능력으로 인해 오다가의 중신으로 올라서게 되고 나중에는 오다노부나가가 
가장신임하는 위치에 까지오르게 됩니다.
이사람의 행적을 살펴보면 노부나가와는 전혀다른 방식으로 주변사람들을 다스렸죠. 오다가 무력으로 다스렸다면 그는 뛰어난 두뇌를 이용해서 주위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끌여 들였고. 사람을 대할때 허물없이 대했기때문에 호감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노부나가가 죽은후에 재빨리 아케치 미쓰히데를 처치하고 오다가의 후계자를 장악함으로서 오다가의 세력을 모두흡수하고 같은 동료였던 시바타 가쓰이에를 무너뜨리고 최대의 라이벌이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굴복시킴으로서 일본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일본통일을 완수하죠.
다만 출신배경탓에 상당한 컴플랙스를 가지고있었고 화려한것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리고 자기자식에 대해 매우약한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마지막에 
죽을때 자기의 어린아들의 장례를 원로들에게 당부하고 그것도 모자랐는지 각서까지 받아내는모습을 보이죠. 
최후에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고 임진왜란을 일으킴으로서 미친놈이라는 말까지들었지만. 최하층에서 최고 지도자까지올라 간인물이기도 합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일본통일을 완수하고 에도막부를 연인물이죠. 세명중에 가장오래살기도했고.
이사람의 역시 앞에두사람 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은파란만장한 생애를 
살다간사람입니다.
어릴때 영주인 아버지가 가신에 의해 살해당하고 처음에는 오다가의 인질로 갔다가 그다음에는 이마가와가의 인질로 가서 어린시절을 인질생활을 하면서 다보냈죠
그의 아내역시 이마가와가의 여자였습니다.
어린시절겪은 인질생활이 그의 인생에 큰영향을 끼친것으로 보입니다. 그가 인질생활에서 풀려나것은 오케하자마전투에서 이마가와 요리토모(맞나??)가 오다 노부나가에게 죽임을 당하면서 입니다. 
자기의 영지인 미카와로 돌아온이후에는 이마가와가와 동맹을 파기하고 오다가와 동맹을 맺으면서 이마가와의 영토를 모두흡수하죠. 
그는 노부나가가 죽을때까지 그와의 동맹을 계속유지하면서 자신의 세력을 유지해나가고 인재들을 가신으로 끌어모으면서 세력을 키워나가죠.
항상 겸손한모습을 보이고 앞에나서지 않는 모습을 보이지만. 젊었을적에는 
상당한 다혈질로 미타카하라전투에서 다케다신겐에게 박살이 나면서 그런 자세를
버리죠.
그로서는 전투에패하기는 했지만 
많은것을 배우게 됩니다. 후에 그 스스로도 자신은 다케다신겐에게서 배웠다고
말하죠. 
그가 전기를 마련하게 되는건 오다노부나가가 죽으면서 입니다만. 그과정에 
옜 다케다세력을 모두 흡수하죠. 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하자 머리를 숙이고 그에게 복종을 맹세하고 영지를 모두뺐기고 다른곳으로 옮기라는 명령까지도 감수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후에 임진왜란에도 군대를 파견하지 않고 군대를 보전해놓다가 히데요시가 죽자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히데요시파영주들을 격파하고 일본을 장악하게 됩니다.
그런데 히데요시가 죽기전에 자기아들의 장래를 부탁한 인물이 이에야스라는게 
참 얄굿기는 합니다만. 
일본을 장악한후에 오사카성 여름과 겨울의 진을 거치면서 히데요시세력을 말소하고 완전한 통일을 이루게 되죠. 이 오사카성전투에서 그유명한 사나다 유키무라가 대활약을 합니다. 결국은 전사하기 합니다만.
아들에게 쇼군자리를 물려주고 자신은 오고쇼로 물러나죠 그렇지만 권력은 계속 장악하고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70대의 나이로 소화불량-_-으로 죽습니다.
세명중에 가장오래살았고 냉정하게 정세를 판단함으로서 목숨을 보전하고
끝내는 천하를 얻은 인물이었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1542.12.26 ~ 1616.4.17> 
이에야스는 8살때부터 노부나가가 이마가와 요시모토를 칠때까지 11년간을 인질 생활을 겪었다.죽으라 하면 죽어야했던 볼모로써 
그런 삶이었기에 그는 모든일에 있어 참아야 했다.그가 나중에 인내의 대명사가 된 시발점이 볼모 생활인 셈이다.그는 처음 이마가와가로 볼모로 가는 도중 도다 가문에 의해 납치. 오와리의 노부히데에게로 가게 된다.그의 아버지인 히로다다는 의리를 저버릴 수 없다하여, 이에야스를 죽이든, 살리든 맘대로 하라" 고 
노부히데에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노부히데는 대노하여, 다케치요(이에야스)를 죽이려 했으나, 때마침 옆에 있던 노부나가가 
자신에게 달라고 하여, 그 후부터 오다가에서 볼모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그러면서 노부나가 에게 살아남는 법을 배우게 되었고, 대를 이어 가문에 충성했던 가신들 덕분에 19살에 
볼모 살이를 끝내고 돌아올 영지가 있었다.그는 노부나가가 요시모토를 제게했을 때부터 비로소 조금씩 자신의 영토를 넓혀갔다.
영지의 지리적위치도 상당히 좋았다.과거의 인연으로 노부나가와 동맹관계를 맺게 되었고, 바로 옆에 그 노부나가가 존재했다.후에 인내의 신으로까지 불리는 그도 젊은 시절의 혈기를 누르지 못한 적이 있었다.그때가 바로 다께다 신겐과의 미카타 들판의 싸움이었다.(미카다까하라 전투)이에야스는 학익진으로 대적했는데, 학익진은 한쪽이 무너져도 재빨리 복구할 수 있는 신겐의 어린진 보다 
많은 병사의 수를 요구했다.
그러나 그것은 커녕 다께다군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 군사로 싸우게 된 것이다.그토록 가신들을 아끼던 그였으나, 그 전투로 인해 많은 가신들이 죽게 되었고, 자신의 세력또한 크게 줄어들게 되었다.그러나, 그는 그 전투에서 대패함으로 후퇴하게 되고, 바로 그곳을 포위하고 있던 신겐이 얼마 후 병사하게 된다.그 일로인해 동맹자 노부나가는 드디어 교토입성을 하게된 것이었다.(일설에는 노부나가의 교토입성이 전국시대의 종결시점이라고도 한다.)
노부나가 휘하의 히데요시와도 적대관계를 갖지 않은 것도 주요했다.미쓰히데의 반란으로 노부나가가 자결한 후, 히데요시가 그 패권을 잡았을 때에도 적지 않은 세력을 보유하였기에,히데요시 에게서도 무사할 수 있었다.그는 후일 히데요시와의 싸움에서 (고마끼 전투) 자신이 우위에 있었으나, 몸을 굽혀 히데요시의 신하가 되었다.히데요시 또한 이에야스가 비범한 인간임을 알고, 이미 결혼한 동생을 이혼케 하여, 이에야스의 정실로 보내고,어머니 또한 인질로 보내게 된다.
그토록 효자라고 불리는 히데요시가 그런 행동을 할 정도였으니, 당시 이에야스의 세력이 결코 무시할 수 없었음을 
나타낸다.그 후 이에야스는 히데요시의 사후 그의 아들 히데요리를 할복케 하고,히데요시의 미완의 통일을 완전히 이루어 냈다.그는 에도에 무사들의 집단인 막부를 세우고, 임진왜란으로 단절된 조선과의 무역을 재개 하였다.그의 지배력은 1868년 메이지유신으로 막부가 소멸될 때까지 260여년을 갔으므로,실로 인간승리의 대명사라 할 수 있다.
또 한가지, 그의 아들 히데다다에 대한 인간됨이다.그는 아사히 히메가 이혼 후 정실로 들어왔음에도 예의 바름으로 항상 공경했기에,그녀가 죽을 때까지 
이에야스 가문에서 유일하게 사랑했던 사람이다.또한 그는, 아버지 이에야스의 거대함을 알고, 모자란 자신을 알았기에 자신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막부를 계승함에 있어서, 아버지의 그림자가 되겠다고 마음 먹는다.신겐의 아들이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려 무리한 전쟁을 한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그 또한 아버지가 평생을 들여 이룩한 평화를 유지하는데, 자신을 버린 것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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