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이야기

신과 나눈 이야기20

2000 머털도사 2008. 6. 19. 22:49
* “극기”는 행동하지 않겠다는 결정이 아니라, “특정 결과를 기대하지 않겠다는 결정”이다.    신과 인간들의 “기쁨”은 “창조”에 있지, “결과”에 있는 것이 아니다.

 * “존재함”은 존재의 최고 상태이고, 순수존재는 순수한 신성이다.

   우리는 단순히 “존재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충분하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늘 ‘우리가 무엇인지’ 체험하기를 갈망했다. 

   이것을 이루려면 ‘행동’이라는, ‘신성의 전혀 다른 측면’이 필요했다.

 * 이렇게 하는 충동“열정”이라고 한다. 따라서 ‘열정을 죽이는 것’은 “신을 죽이는 것”이다.

 * 일단 신(혹은 내면의 신)은 그런 식의 사랑을 하고 나면, 즉 자신을 실현시키고 나면,

   더 이상 아무 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 그러나 인간들은 흔히 “투자”한 것에 대한 “반대급부”를 필요로 한다.

   이것은 ‘열정’이 아니라 ‘기대’이다. 기대는 인간관계를 어렵게 한다.

 * 선각자들은 “열정”이야말로 신에게 이르는 길, “자기실현”으로 가는 길임을 직관으로 안다.

   “열정이 없다면 전혀 사는 것이 아니다.”라는 세속적인 표현조차도 이 점을 나타낸다.

 * ‘금욕주의자의 삶’은 진리가 아니다.

   왜냐하면 “저항”하고 “거부”하는 것은 끈질기게 “지속”되기 때문이다.


 * “참된 극기”는 거부하지 않는다.  단지 “다르게 선택할 뿐”이다.

   다르게 선택하는 것은 어떤 것에서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향해 움직여 가는 행동이다.

   유혹에 “저항”하지 말고, 그저 그것에서 “돌아서기만 하라.

 * 그러나 우리의 여정에서 우리가 가려는 곳에 ‘이르지 않을’ 수는 없기 때문

   “잘못된 길”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그 뜻은 단지 “속도의 문제”, 즉 언제 그곳에 닿을 수 있는지의 문제일 뿐이다.

   사실 이것조차도 하나의 “환상”이다. ‘언제’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고 전과 후 역시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존재하는 것은 ‘현재’이다. 우리가 자신을 체험하는 항상이라는 영원 속에서.

 * 삶과 자신의 하는 일에 대해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단지 “주의”를 기울이기만 하면 된다.

   그저 지금 “자신이 무엇이 되고 있고, 무엇을 하고 있고, 무엇을 갖고 있는지 깨닫고,

              그것이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지”만 살펴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