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물

맹자

2000 머털도사 2007. 9. 10. 03:01
맹자 ( 372년 ~ 298년 )
맹자는 기원전 372년에 나서 298년에 죽었습니다. 공자가 죽은 뒤 100년쯤 지나서 태어난 셈입니다. 앞의 대화에서 보았듯이 맹자 스스로도 공자를 이었다고 자부했으며, 후세 사람들 또한 맹자를 '공자에 버금가는 성인(亞聖)'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선지 생존 연대가 잘 맞지 않는 문제가 있음에도, 맹자가 공자의 손자인 자사의 문인에게서 배웠다고 전해집니다.
맹자는 전국 시대의 철학자였습니다. 전국 시대는 공자가 활동했던 춘추 시대보다 혼란이 더 심했습니다. 봉건 체제 내의 하극상이 매우 잦아졌고, 민중에 대한 수탈이 극에 달했습니다. 맹자의 표현처럼 들에는 굶어 죽은 시체가 그득하고, 살아 있는 민중들도 굶주린 기색이 뚜렷했습니다. 그래서 위로는 부모를 모시기에 부족하고, 아래로는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런데도 지배자들은 사치와 탐욕, 그리고 침략 전쟁을 일삼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점차 몇몇 세력 있는 제후들에게로 힘이 모아졌고, 맹자는 그 가운데 일부 임금들에게 질서 회복의 기대를 걸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제선왕, 양혜왕, 등문공 등이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제후들은 맹자의 뛰어난 말솜씨에 걸려들기는 했지만, 그의 말대로 실천하려 하지는 않았습니다. 당시 왕들에게 환영받은 주장은 부국 강병 전략인 합종책과 연횡책이었을 뿐입니다.
맹자의 이름은 가(軻)이고, 공자가 태어난 노나라와 아주 가까운 추나라에서 태어났습니다. 추나라는 오늘날 중국의 산동성 남쪽 지역에 해당합니다. 맹자에게는 성장과 관련된 몇 가지 고사가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 교육을 위해 애쓰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맹자 어머니도 아들 교육을 위해 무던히 애썼던 모양입니다. 처음에 맹자네는 묘지 근처로 이사를 갔습니다. 거기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은 장사지내는 일이었기에, 맹자는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장사지내는 흉내를 내며 놀곤 했습니다. 이런 모습에 놀란 맹자의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집을 옮겼습니다. 이번에는 시장 부근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맹자는 물건을 팔고 사는 흉내를 내면서 놀았습니다. 맹자 어머니는 다시 학교 부근으로 이사했습니다. 그러자 맹자는 공부하는 흉내를 내면서 놀았고, 그제서야 맹자 어머니는 마음을 놓았습니다. 이 이야기가 유명한 '맹모삼천지교'입니다.
'맹모단기지교'라는 일화도 있습니다. 어느 정도 자란 맹자가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가서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맹자가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어서 하던 공부를 중단하고 집으로 돌아와 버렸습니다. 이때 비단을 짜고 있던 맹자 어머니는 틀에 걸린 비단을 칼로 끊어 버림으로써 아들에게 가르침을 주었다고 합니다.
맹자의 생애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공자가 했던 것처럼 제자들과 함께 여러 나라를 찾아다니면서 도덕을 바탕으로 한 왕도 정치를 부르짖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제나라 수도의 직문(稷門)아래에 학자 단지를 세워 놓고, 훌륭한 선비들을 초빙하여 우대하였습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을 직하학파(稷下學派)라고 불렀는데, 맹자도 한때 그곳에 머물렀습니다.
맹자의 주장에는 임금들이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민본 사상이나 혁명 사상이 그랬습니다. 따라서 어느 임금으로부터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맹자는 공자와 마찬가지로 70세 무렵에 고향으로 돌아와 제자들을 가르치고 저술을 했습니다.
맹자의 사상이 잘 나타나 있는 책이 <맹자>입니다. 이 책을 지은 사람이 누구인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맹자가 쓴 글도 있고, 제자들이 정리한 것도 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맹자는 모두 일곱 편이고, 각 편이 상하로 나뉘어 있습니다. 뒤에 주자가 대학, 중용, 논어와 한데 묶어 4서로 만들고 나서 유명한 책이 되었습니다.
무엇이 인간의 참 모습인가 
공자가 살던 시기에도 인간의 본성에 대한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중심 주제는 아니었습니다. 공자는 "인간의 본성은 소로 비슷한데, 습관에 의해 서로 멀어진다"는 말을 했을 따름입니다. 본성론은 맹자에 이르러 철학이 중심 주제로 자리잡습니다.
이 같은 변화는 당시의 급격한 사회 변동과 관련이 있습니다. 혈연 관계에 기초한 강력한 통치력을 갖추고 있던 주나라가 후기에 접어들며, 혈연 관계가 점점 엷어지면서 큰 혼란에 빠졌고, 이 틈을 타서 제후들은 영토 확장을 위한 전쟁을 끊임없이 벌여 갔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자식을 서로 바꿔서 잡아먹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엄청난 혼란을 가져왔습니다. 전국 시대 중기와 후기의 사상가였던 맹자와 순자에서 인간 본성에 대한 관심이 논의의 핵심 주제가 된 것은 이런 사회 변동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맹자 이전에는 어떤 것을 인간의 본성으로 보았을까요? 성(性)은 심(心)과 생(生)을 합쳐 만든 글자입니다. 글자대로 풀면, 성의 본래 뜻은 '마음속에서 생겨난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속에는 도덕적인 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생리적 욕구와 감정이 같이 들어 있습니다. 원시 상태에서 인류가 본 자신의 모습은 도덕적인 면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보다 생리적인 면과 감정적인 면이 더 자연스러운 본질로 보였을 게 당연합니다. 이 같은 생각은 맹자 무렵까지도 계속 이어져 왔습니다.
맹자는 여기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습니다. 도덕성을 인간의 본질로 본 맹자의 성선설은 그때까지 내려온 인간의 자기 규정을 뒤엎은 혁명이었습니다.
맹자 당시에 인간의 본성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떤 논의들이 있었을까요? <맹자>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견해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첫째, 본래는 착한 요소도 없고, 악한 요소도 없다는 주장입니다.
둘째, 착해질 수 있는 요소와 악해질 수 있는 요소가 동시에 들어 있다는 주장입니다.
이 두 견해는 결과적으로 선으로도, 악으로도 갈 수 있다는 점에서 보면 같은 생각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을 채우고 있는 내용을 본다면, 정반대인 셈입니다.
셋째는, 날 때부터 본성이 착한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다는 주장입니다.
이러한 주장들에 맞서 맹자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인간의 본성은 착하다고 했습니다. 맹자의 이러한 주장은 공자가 사람의 본질로 내세운 사람다움, 즉 인(仁)을 체계화한 것이라고 평가됩니다.
그러면 맹자의 주장은 어디에 근거를 두고 있을까요?
맹자는 용자라는 사람의 말을 인용하면서, 만일 어떤 사람이 누구를 위해 신발을 만들어 준다고 할 때, 그 사람의 발 크기를 모른다고 해서 신발 모양을 삼태기처럼 만들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그 까닭은 모든 사람의 발 모양이 비슷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맹자는 사람의 겉모습에 공통점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시 겉모습만이 아니라, 맛을 보고 소리를 듣고 모습을 보는 데도 공통점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외모나 감각 기관에만 공통점이 있을까요? 그런 것이 아니라 마음에도 공통점이 있으며, 이것이 바로 사람들의 도덕적 품성이라는 것입니다.
외모나 감각으로부터 마음의 공통점을 이끌어 낸 것은 뛰어난 유추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비약이기도 합니다. 사실 미각, 청각, 시각 자체는 생리적 본능에 속하는 감각이며, 맛있다거나 아름답다거나 소리가 듣기 좋다거나 하는 느낌들은 감각 능력을 통한 결과로서 의식 형태의 범주에 속합니다. 그런데 맹자는 본질적으로 선의 요소가 마음에 들어 있다는 가설을 입에 맛보는 기능이 있다는 생리적 사실과 일치시켰습니다. 이것은 자연 법칙과 도덕 법칙을 하나로 보는 유가의 특징을 잘 보여 주는 것입니다. 
맹자는 사람의 본성이 착하다는 증거로 우물에 빠지려는 아이의 예를 들었습니다. 누구든 길을 가다가 우물에 빠지려는 아이를 보면, 즉시 '저런, 저거 안 되는데'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황급히 달려가 아이를 구하는데, 그렇게 하는 것은 나중에 어린애를 구해 준 것을 빌미삼아 그 아이의 부모와 사귀어 보려 해서도 아니고, 동네 사람들이나 벗들에게 침찬을 듣기 위해서도 아니며, 사람들로부터 물에 빠지는 아이를 그냥 보고만 있었다는 비난의 소리를 듣기 싫어서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모습을 본 순간 생겼던 순수한 마음, 이 마음을 맹자는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不忍人之心)'이라고 부르며, 누구에게나 다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이런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고 규정합니다.
맹자는 이런 마음말고도 자기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잘못을 미워하는 마음, 사양하는 마음,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이 누구에게나 다 있다고 합니다. 이 마음들을 잘 기르면 완전한 인간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이것들을 '착해질 수 있는 네 가지 실마리(四端)'라고 합니다. 맹자는 이 네 가지 단서가 사람 마음에 있는 것은 몸에 팔다리 네 개가 있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맹자는 4단을 선천적인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의 선천적인 요소를 '양지', '양능'이라는 말로도 설명했습니다. 양지 양능이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어린 아이가 제 부모를 따를 줄 아는 것처럼, 배워서 아는 것도 아니고 따져 봐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닌 태어나면서부터 저절로 갖춘 것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맹자의 양지 양능은 뒤에 명나라 때 나온 양명학에서 큰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맹자의 인간 규정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사람이 살아가는 현실은 이상과 다릅니다. 악한 행동과 그로 인한 혼란이 꼬리를 물로 일어납니다. 본래 착한 사람들이 왜 악한 행동을 하게 될까요? 그들의 나쁜 행동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맹자는 사람들이 하는 나쁜 짓은 본질적인 모습이 아니라고 합니다. 따라서 나쁜 행위 자체는 사람이 하는 것이지만, 그 근본적인 원인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 환경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맹자는 그 증거로 산을 비유로 들어 말합니다.
본래 나무가 빽빽이 들어찬 산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무꾼들이 매일 산에 올라가 나무를 베어 내고, 소 먹이는 아이들이 풀을 뜯어 먹여서 헐벗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헐벗은 산의 모습을 보면서, 저 산은 처음부터 나무가 없는 산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그 산의 본모습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본성도 매일 나무를 잘라내듯 착한 마음을 자라지 못하게 하는 나쁜 환경 때문에 악한 짓을 하는 것이지, 그것이 본래 모습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맹자가 산을 비유로 든 것은 썩 어울리는 설명은 아닙니다. 하지만 맹자는 환경적 요소에 따라 좌우되는 감정과 욕구를 악의 근원으로 보고, 그러한 힘은 내적인 자발성에 근거하지 않은 부차적인 것이라고 생각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인간성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자신의 철학을 세워 갔습니다. 
군자의 본성과 소인의 본성 
맹자가 살던 시대에는 노예부터 귀족에 이르기까지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맹자가 본성이 착하다고 한 그 사람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일까요? 보편적인 사람 모두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중 어떤 계층에 강조점이 있는 것일까요?
물론 맹자가 착하다고 한 사람은 모든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합니다. 맹자는 분명히 남에게 차마 나쁜 것을 못 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라고 했고, 또 4단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맹자의 말 가운데는 달리 생각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 보입니다.
입이 단맛을, 눈이 아름다운 빛깔을, 귀가 밝은 소리를, 코가 향기를 좋아하고 팔다리가 편안함을 원하는 것이 본성이긴 하다. 하지만 그 속엔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命)'이 있기 때문에 군자는 본성이라고 하지 않는다.
맹자는 감각적·생리적인 것도 인간의 본성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이 있기 때문에 본성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주체를 군자에 한정짓고 있습니다. 맹자가 부정한 감각적 생리적 본성이란 배고픔, 목마름, 피곤함 같은 것입니다. 배고픔을 의지로 참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감각 자체를 없앨 수는 없습니다. 맹자가 말한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란, 배고프다고 느끼는 것 자체는 내 의지 밖에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을 본성으로 보지 않는 사람은 군자입니다. 따라서 군자가 아닌 사람들은 그런 것을 본성으로 보기도 한다는 말이 됩니다. 맹자는 그런 사람들을 소인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군자의 본성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인의예지입니다. 인의예지는 감각이나 생리적 욕구가 아닌 마음속의 도덕 의지에서 나옵니다. 맹자는 감각 기관이 하고자 하는 대로 따라가는 사람은 소인이고 마음이 하고자 하는 옳은 방향대로 따라가는 사람은 군자이며, 감각 기관은 천한 것이고 마음은 귀한 것이라고 합니다.
소인은 일정한 생활 근거가 있을 때는 변치 않는 마음이 있지만, 일정한 생활 근거가 없어지면 마음도 변하는 사람입니다. 군자는 이와 달리 일정한 생활 근거가 없을 때도 마음이 변치 않는 사람입니다. 즉 소인은 자기 밖의 변화에 따라 안이 달라지는 사람이지만, 군자는 밖의 변화로부터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 사람입니다. 맹자는 군자를 선비, 대인이라는 말로도 부릅니다.
그러면 맹자가 말하는 군자·선비·대인은 사회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떠한 지위에 있고 어떠한 역할을 하는 사람일까요? 맹자는 소인과 대인이 사회에서 하는 역활을 다음과 같이 나눕니다.
대인이 할 일이 따로 있고, 소인이 할 일이 따로 있다. 사람이 살아가자면 여러 공인들이 만든 물건이 필요하다. 하지만 만일 그 모두를 반드시 스스로 만들어 쓰게 한다면, 온 세상 사람들을 끌어다가 일에 지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마음을 수고롭게 하고, 어떤 사람은 몸을 수고롭게 한다고 했다. 마음을 수고롭게 하는 사람은 남을 다스리고, 몸을 수고롭게 하는 사람은 남에게 다스림을 받는다. 남에게 다스림을 받는 사람은 남을 먹여 주고, 남을 다스리는 사람은 남에게 얻어먹는 것이 온 세상에 통하는 원칙이다.
대인은 마음 고생을 하면서 남을 다스리고, 그 대가로 남이 생산한 식량을 먹는 사람입니다. 소인은 몸 고생을 하면서 남에게 다스림을 받고, 자기를 다스리는 사람을 먹여 살리는 사람입니다. 맹자가 본 본성이 착한 사람은, 사실상 통치 지위에 있거나 아니면 통치 지위에 오를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맹자는 현실적으로 강한 힘을 가진 지배 계층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그들의 내면에 본질적으로 들어 있는 선의 요소를 완전히 발휘하여 현실의 혼란을 종식시킬 것을 바랐던 것입니다.
이러한 맹자의 주장에는 지배 계층의 입장에 선 군자·대인·선비의 교화에 의해 세상을 바로잡을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한계가 보입니다. 실재로 주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지배층을 군자라고 불렀으며, 피지배층은 소인 또는 민(民)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춘추 시대의 혼란은 신분 질서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신분 질서의 변화는 지배 계층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 피지배 계층에서도 엄청나게 심했습니다. 이러한 신분 변화를 통해 농노의 신분에서 벗어난 계층도 많아졌으며, 이들을 일반 백성(民)과 구별하여 소인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맹자가 모든 사람의 본성이 착하다고 함으로써 소인과 민까지를 포함시킬 수 있게 말한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이것은 피지배 계층인 소인과 민에게 지배 계층인 군자·대인·선비의 교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가능 근거를 주기 위한 것이었을 뿐입니다. 이런 점이 유가가 민중 중심의 묵가 사상과 본질적으로 다른 부분입니다.
그렇다면 맹자의 성선설에는 지배 집단이 피지배 집단보다 도덕적으로 뛰어나다는 의미 외에 다른 가치는 없는 것일까요? 물론 맹자의 주장이 후대 정권 담당자들에 의해 지배를 합리화하는 도구로 쓰였던 것은 분명합니다. 역사상 지배 집단은 언제나 피지배 집단보다 도덕적으로 뛰어나며, 따라서 피지배 집단을 교화할 능력과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합리화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당시의 시대적 조건 속에서 맹자 사상의 긍정적인 점을 찾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첫째, 당시는 엄청난 변화의 시대였습니다. 피지배 계층인 민중도 그러한 변화 속에서 신분 상승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많았습니다. 맹자는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이전까지는 노동 도구로서만 의미가 있었던 민중에게도 인간의 본질인 선의 요소가 들어 있음을 인정하여, 민중을 도덕적 실현이 가능한 범주로 끌어올린 것입니다. 비록 교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가능성 정도의 의미이긴 하지만, 민중을 주체적 인간으로 파악하려 한 노력이 보인다는 점입니다.
둘째, 맹자는 군자·대인·선비에게 통치의 역할을 인정함으로써 그들의 지배를 합리화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에게 도덕 실천을 통한 자아의 완성이라는 책무를 주었습니다. 그 결과 그의 정치 사상에서 보이는 것처럼 민중을 위해 지배 계층의 더 많은 양보를 확보해 내려 했습니다.
셋째, 맹자가 살았던 때는 전국 시대 중기였습니다. 당시는 이미 주나라 왕실이 유명 무실해졌고, 그 틈을 타서 힘을 길러 무력으로 통일을 이루려는 제후들이 큰 세력을 잡고 있었습니다. 맹자는 그들 가운데 몇몇에게 천하 통일의 기대를 걸어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힘을 길러서 통일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맹자의 생각과 맞지 않았습니다. 맹자는 이런 거싱 모두 이익 추구에서 오는 것이며, 근본적인 원인은 인간의 생리적 본성을 중시하는 데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지배 집단 혹은 지배 집단이 될 수 있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본성이 감각적인 부분이 아니라 도덕적인 부분임을 일깨워 준 것입니다.
유가의 파수꾼 
맹자가 살던 시기에 유가는 어떤 계층으로부터도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맹자는 사람들이 대부분 양주 아니면 묵적을 따른다고 비판했습니다. 이런 맹자의 비판 의식은 우리 나라 조선 후기에 천주교로 대표되는 서양 사상의 유입에 대응하는 척사 위정 논리의 근거가 되기도 했습니다. 사실 유가 이론은 지배 집단의 잘못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용적으로는 기존 질서를 지키려는 뜻이 강하게 들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맹자는 전통 질서와 신분제를 부정하는 민중 중심의 이론을 단호하게 배척했습니다.
맹자가 배격 대상으로 삼은 것은 크게 세 가기 사상입니다.
하나는 양주의 사상이었습니다. "내 몸의 털 한 가닥을 뽑으면 온 세상이 잘된다고 해도 나는 하지 않겠다"는 말에서 보이듯 양주의 사상은 극단적인 개인주의였습니다. 남으로부터 빼앗기지 않지만 결코 남을 위해 희생하지도 않겠다는 사상입니다. 일반적으로 양주의 사상은 노장 계열의 사유 체계로 봅니다. 이러한 사유는 언제나 지배 집단의 강압에 희생당하기만 하는 피지배 집단의 소극적인 저항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는 일반인의 개성이 존중되지 않는 봉건제 사회였습니다. 전국 시대의 혼란이 봉건적 질서의 붕괴에서 왔다고 보는 유가가 피지배 집단의 개성을 논함으로써 개인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양주의 사상을 큰 적으로 본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맹자는 양주의 사상을 따지면, 결국 자기 임금을 부정하게 된다고 비판하였습니다.
두번째 배격 대상은 묵자였습니다. 묵자는 지배 집단을 향해 피지배 집단을 똑같이 사랑하고, 이익을 함께 나누자고 외쳤습니다. 게다가 주장만으로 그치지 않고 집단을 통한 사회적 실천으로까지 나아갔습니다. 맹자는 묵자의 무차별한 사랑은 자기 아버지를 남의 아버지와 똑같이 사랑하라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자기 아버지에 대한 부정이 된다고 비판하였습니다.
세번째 배격 대상은 허행으로 대표되는 농가였습니다. 그들은 지배 계급이 노동하지 않는 것을 반대하면서, 임금도 백성과 함께 농사지어 먹고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맹자는 그들이 농사를 직접 짓기는 하지만 모자나 솥은 자신들이 생산한 곡식과 바꿔 구입한다는 데 착안하여, 지배 집단도 분업의 논리에 따라 다스리는 일을 맡은 사람들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맹자가 주 공격 대상으로 삼은 사상들은 모두 지배 집단에 불리한 것들이었습니다. 여기서 맹자 사상의 또 다른 모습인 보수적 성격을 볼 수 있습니다.
참다운 임금의 길 
맹자는 전국 시대의 혼란을 끝낼 수 있는 방법은 왕도 정치의 실현이라고 보았습니다. 맹자의 왕도 정치 이론은 성선설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성선의 근거는 하늘에 있습니다. 왕도 정치는 도덕의 근원인 하늘의 뜻을 실현하는 일인 동시에 하늘로부터 받은 인간의 착한 본성을 실현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 인류는 자연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인식하였습니다. 중국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고대 중국인들은 자연의 꼭대기에 하늘을 놓고,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러나 맹자의 하늘은 단순한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도덕의 근원이었습니다. "사람이 제 마음을 다하면 자기의 본성을 알게 되고, 자기의 본성을 알면 하늘을 안다"고 한 말은 이러한 맹자의 생각을 잘 나타내 줍니다.
하늘이 도덕의 근원이라는 생각은 정치적 입장을 설명하는 이론으로도 연결됩니다. 맹자는 도덕의 근원인 하늘이 덕이 많은 사람을 택해 임금을 시킨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통치자는 하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서도 도덕에 바탕을 둔 정치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착한 본성이 있기 때문에 그 본성을 잘 기르면 성인이 될 수 있다고 본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임금은 어진 마음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잘 기르면 왕도 정치를 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왕도 정치는 덕으로 하는 정치이고, 그 반대는 힘으로 하는 패도 정치입니다. 사실 고대부터 오늘까지 어떤 통치 집단도 국가와 사회와 민족을 위해 일한다고 하지, 자기 자신이나 자기 집안을 위해 일한다고는 하지 않습니다. 힘으로 다스리는 독재 권력도 언제나 민주를 가장합니다. 맹자가 주장한 참다운 임금의 길은 바로 이 같은 통치 집단의 허위 의식에 대한 지적이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맹자가 양나라 혜황을 만났다. 왕이 맹자에게 물었다.
선생께서 천리길을 멀다 않고 저희 나라를 찾아 주셨으니 저희 나라에 무슨 이로운 일이 있게 될까요?
왕께서는 하필이면 이로움을 말씀하십니까? 오직 인과 의가 있을 뿐입니다. 임금께서 어떻게 하면 내 나라에 이로울까를 따지면 벼슬아치들은 어떻게 하면 내 집안에 이로울까를 따지게 되고, 선비나 일반 민중들은 어떻게 하면 내게 이로울까를 따지게 됩니다. 그러면 나가가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맹자는 철저하게 이익을 배격했습니다. 심지어 맹자는 전쟁이 이롭지 못하다고 설득함으로써 초나라와 진나라의 싸움을 말리려 했던 송경이라는 사람을 보고,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것으로 설득해서는 안되며 오직 인과 의로써 설득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면 인과 의에 기초한 왕도 정치란 어떤 모습일까요?
양혜왕이 고민스러운 표정으로 맹자에게 물었습니다.
저는 나라를 다스리는 데 온 마음을 쏟고 있습니다. 어떤 지방에 흉년이 들면 그 곳 뱅성들 가운데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을 다른 지방으로 옮겨 주고, 거동이 어려운 노약자를 위해서 곡식을 날라다 줍니다. 다른 지방에 흉년이 들어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합니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저만큼 백성들에게 마음을 쓰는 임금이 없는데, 어째서 이웃 나라 백성이 줄지 않고 우리 나라 백성이 늘지 않는 것일까요?
당시 제후국들은 독립적이기는 했지만 사실은 모두 주나라에 속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언제라도 국경 통과세만 내면 다른 나라에 가서 살 수 있었습니다. 어떤 나라에서 백성들을 크게 위한다는 소문이 나면 그 나라로 백성들이 몰리는 것을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백성들이 느는 것은 노동력과 군사력이 느는 것입니다. 따라서 강한 나라를 만들어 천하를 틀어쥐려는 야심을 가진 양혜왕이 백성이 늘지 않는다고 고민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맹자는 양혜왕의 고민에 찬 질문에 대해 첫 마디부터 비꼬는 태도로 응수합니다.
왕께서 전쟁을 좋아하시니까 제가 전쟁에 빗대어 말씀드리지요. 한참 맞붙어 싸우다가 힘이 달려 갑옷도 내던지고 무기를 질질 끌면서 달아나는데, 어떤 자는 쉰 걸음 도망가서 멈추고 어떤 자는 백 걸음 도망가서 멈추었습니다. 쉰 걸음 도망간 자가 백 걸음 도망간 자를 비웃으면서, '야, 이 비겁한 놈아!'하면 어떻겠습니까?
말도 안 되지요. 백 걸음이나 쉰 걸음이나 달아난 것은 마찬가지지요.
양혜왕은 맹자의 논리에 걸려들었습니다. 회심의 미소를 지은 맹자는 흐르는 물처럼 자기 주장을 펴 나갑니다.
그런 이치를 아신다면 이웃 나라보다 백성이 많아지기를 바라지 마십시요. 백성들의 농사철을 빼앗지 않는다면, 곡식이 다 먹지 못할 정도로 많아지겠지요. 가는 그물로 어린 물고기까지 잡지 못하게 한다면, 다 먹지 못할 만큼 물고기가 많겠지요. 적절한 때에만 나무를 베어 내게 한다면, 재목이 쓸 수 없을 만큼 많아지겠지요. 이렇게 하면 산사람이 먹고 사는 데 문제가 없을 것이며, 죽은 사람 장사지내는 데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왕도 정치의 시작입니다.



백성들에게 집 주변 땅에 뽕나무를 심게 하면 50세 이상 노인들이 비단옥을 입을 수 있고, 닭·돼지·개 같은 가축의 번식 시기를 놓치지 않게 하면 70세 이상 노인들이 고기를 먹을 수 있겠지요. 한 가구가 농사지어 먹을 수 있을 만한 땅에 농번기의 일손을 빼앗지 않는다면, 식구들이 굶주리지 않겠지요. 학교 교육을 잘 실시하고 부모에 대한 효와 형제간의 우애를 되풀이해서 가르치면, 머리 허연 노인들이 짐을 진 채 길을 가지 않게 되겠지요. 이렇게 하고서도 왕 노릇 하지 못한 사람은 아직 없습니다.
위의 대화에서 보았듯이 맹자가 무조건 도덕만을 강조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경제적 토대가 없는 왕도 정치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으며, 민중의 삶을 확보해 주고 나면 왕 노릇이 저절로 이루어진다고 보았습니다. 정전제를 실시하여 그 땅에서 난 수확에 대해 10분의 1의 토지세만 걷어야 한다는 견해와, 점포세와 국경 통과세를 폐지 하자는 명자의 주장들은 왕도 정치 실현을 위한 구체적 방안이었습니다.
음악도 여자도 제물도 민중과 함께 
맹자가 하루는 제나라 성왕을 만나 물었습니다.
어떤 신하에게서 들으니 왕께서 음악을 좋아하신다는 데 사실입니까?
왕은 얼굴이 벌개지며 부끄러운 듯 대답했습니다.
사실 제가 좋아하는 음악은 유행가입니다.
왕께서 음악을 좋아하신다면 천하를 통일할 수 있습니다. 본래 음악이란 가곡이나 유행가나 원리는 같으니까요. 그런데 혼자서 음악을 즐기는 것과 남과 더불어 함께 즐거는 것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좋을까요?
그야 여럿이 즐기는 게 좋겠지요.
그렇다면 많은 사람이 즐기는 것과 몇 사람이 즐기는 것은 어떨까요?
많은 사람이 즐기는 것이 좋겠지요.
제선왕도 맹자의 말에 말려들었습니다. 맹자는 신이 나서 거침없이 하고 싶은 얘기를 시작합니다.
그러면 음악을 가지고 얘기해 보지요. 왕께서 음악을 연주하는데 배성들이 듣고는 머리를 흔들고 얼굴을 찡그리면서 '우리 임음 음악 되게 좋아하지. 우리는 이 지경으로 사는데 말야'라고 말합니다. 또 왕께서 사냥을 나가는데 백성들이 그 모습을 보고는 머리를 흔들고 얼굴을 찡그리면서 '우리 임금 사냥 되게 좋아하지. 우리는 이 지경으로 사는데 말야'라고 말합니다.



또 반대로 왕께서 음악을 연주하는데 백성들이 듣고는 좋아서 벙글대며 '우리 임금 다행히 건강하신가 봐. 어쩌면 저리도 연주를 잘 하실까'라고 말합니다. 또 왕께서 사냥을 나가는데 백성들이 그 모습을 보고는 좋아서 벙글대며 '우리 임금 다행히 건강하신가 봐. 어쩌면 저리도 사냥을 잘 하실까'라고 말합니다. 이 차이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왕께서 백성과 함께하느냐 그러지 않느냐의 차이입니다.
며칠 뒤 제선왕이 다시 맹자를 보고 말했습니다.
저는 아무래도 왕도 정치를 할 수 없나 봅니다. 제게는 재물을 좋아하는 못된 버릇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슨 어려움이 되겠습니까? 재물 좋아하는 것을 백성과 함께 하십시오. 떠나는 사람이 언제나 임금 창고의 곡식을 가지고 떠날 수 있고, 그대로 머물러 사는 사람들이 언제나 임금 창고의 곡식을 먹을 수 있으면 됩니다.
아, 그렇겠군요. 그런데 제게는 또 못된 버릇이 있습니다. 제가 여자를 좋아합니다.
그게 무슨 흠이 되겠습니까? 여자 좋아하는 것을 백성과 함께 하십시오. 그래서 시집 못 간 처녀와 장가 못 간 총각이 없게 하시면 됩니다.
며칠 뒤 제선왕이 맹장를 보고서는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로 터덜대면서 물었다.
문왕의 사냥터가 사방 70리였다는 말이 정말입니까?
예,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내 사냥터는 사방 40리밖에 안 되는데도 백성들이 넓다고 하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문왕은 사냥터가 사방 70리나 되었지만 그 사냥터를 백성과 함께 썼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배성들은 오히려 좁다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왕께서는 사방 40리의 사냥터를 혼자서만 쓰면서 그 안에 들어와 사냥을 하거나 나무를 베면 벌을 줍니다. 이것은 나라 안에 사방 40리짜리 함정을 파 놓은 것과 같으니, 어찌 넓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사실 맹자의 왕도 정치는 현대 민주주의에서 보면, '민중에 의한' 정치나 '민중의' 정치는 아니었고 단지 '민중을 위한' 정치였습니다. 하지만 2000여 년 전의 절대 군주들에게 백성들에 대한 양보를 요구한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맹자는 군주들을 향해 민중을 위하라고 했을 뿐만 아니라, 가장 귀한 것이 백성이고 그 다음이 국가이며 가장 가벼운 것이 임금이라고까지 하였습니다. 그래서 백성의 마음을 잃으면 천하를 잃는 것이라고 하였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덕이 없는 임금, 즉 백성들이 따르지 않는 임금은 갈아엎어야 한다고까지 했습니다.
백성이 따르지 않는 임금 
맹자는 하늘로부터 천명을 받는 사람이 왕이 될 수 있으며, 그 천명은 덕 있는 사람에게 주어진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천명을 받았는가, 그렇지 못한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맹자는 민중이 따르는가, 그렇지 않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예전에 요임금이 순에게 왕위를 주었다. 그러자 순은 요의 아들이 있는데 자신이 어떻게 왕이 될 수 있느냐고 하면서 숨어 버렸다. 백성들이 모두 순을 쫓아갔다. 순은 신하인 우에게 왕위를 주었다. 우도 순의 아들이 있기 때문에 왕이 될 수 없다고 하며 숨어 버렸다. 역시 백성들이 우를 쫓아갔다. 우도 신하인 익에게 왕위를 주었다. 익 또한 우의 아들이 있기 때문에 왕이 될 수 없다고 하며 숨어 버렸다. 그러나 백성들은 익을 쫓아가지 않았다.
맹자는 백성이 따르지 않는 임금은 이미 천명이 떠난 임금이며 따라서 혁명이 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맹자는 그런 점에서 하나라를 무너뜨리고 은나라를 세운 탕임금의 혁명이나 은나라를 무너뜨리고 주나라를 세운 무왕의 혁명을 긍정했습니다. 그는 탕왕이 하나라의 폭군 걸을 죽은 것이나 무왕이 은나라의 폭군 주를 죽인 것은 못된 사나이 하나를 죽인 것일 뿐, 신하가 임금을 죽인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맹자는 또 이 혁명 전쟁이 아주 치열해서 피가 강물처럼 흘러 쇠절구공이가 둥둥 떠내려갔다는 옛 기록을 부정합니다. 백성들이 따르는 임금이 백성들이 따르지 않는 한 사나이를 치는데 전쟁이 심했을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맹자의 혁명론에는 한 가지 필수 전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혁명 주체에게 민중의 뜻에 근거한 도덕성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과거 봉건 왕조의 교체는 언제나 혁명이냐 아니냐의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5·16과 12·12의 주체들이 자신들의 행동을 혁명이라고 강변하지만, 역사가 준엄하게 군사 쿠테타로 규정한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맹자의 혁명론은 지배 집단에게는 반갑지 않은 것이었지만, 임금이 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꼭 필요한 주장이었습니다. 
꿋꿋함은 어디서 오는가 
<맹자>에 나타난 맹자의 모습은 당당합니다. 그런 꿋꿋함은 어디서 왔을까요?
맹자는 제자 공손추와의 대화에서 용기 있는 옛 사람으로 북궁유와 맹시사, 그리고 증자를 듭니다. 북궁유는 바늘로 눈을 찔리면서도 깜박거리지 않고, 모욕을 당하면 상대가 누구든 가리지 않고 반드시 보복을 하는 사람입니다. 맹시사는 이기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이길 것처럼 대드는 사람입니다. 증자는 스스로 자신을 돌이켜보아 거리낌이 없으면 천만 명과도 대적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의 용기를 평가하고 나서 맹자는 자기가 호연지기를 잘 기른다고 덧붙였습니다. 맹자의 꿋꿋함은 바로 호연지기에서 온 것입니다.
호연지가가 무엇이냐는 공손추의 질문에 대한 맹자의 첫 마디는 "설명하기 어렵구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호연지기가 온 세상을 꽉 채울 수 있는 도덕 기운임을 밝힙니다. 호연지기는 밖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실천을 통해 쌓은 정당함에서 나오는 기운입니다. 사실 맹자 이전의 기에 대한 이해는 대자연의 기운이나 인간의 혈기와 같이 자연적인, 또는 생리적인 것이었습니다. 맹자는 호연지기를 도덕적 실천을 길러진 도덕 기운으로 파악함으로써 기 개념을 확대 발전시켰습니다.
호연지기를 가진 사람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일까요? 맹자는 세상에 살면서 올바른 자리에 서서 도를 실천해 가는 사람으로 보았습니다. 이런 사람은 부귀로 유혹해도 마음을 바꾸지 않고, 위협이나 무력에 굴복하지 않으며, 가난 같은 어려운 상황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맹자는 이런 사람을 대장부라고 하였습니다.
맹자는 강한 자기 확신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인간의 본질은 선이며 그 근거는 하늘이라고 하면서, 왕도 정치를 통해 인간의 선한 본성을 사회에 실현해 보려고 했습니다. 맹자는 자기 마음을 다함으로써 사람의 본성이 어떠한 것인가를 제대로 깨달은 사람을 하늘의 백성이라고 하였습니다. 맹자가 바라본 사람은 사회를 떠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은 사회 속에서 실천하는 존재이며, 그 경우 강한 힘은 인간 본질에 대한 신뢰에서 출발한다고 본 것입니다. 맹자의 사상은 후대 유학자들의 참된 표본이 되었으며, 지배 계급에게는 항상 경종이 되었습니다.
맹자
가는 자는 쫓지 않는다. 오는 자는 거부하지 않는다. 나에게서 떠나는 자는 떠나는 대로 두고 가르침을 받고자 오는 자는 그 사람의 과거에는 구애됨이 없이 맞이한다. -맹자 
가르치는 데에도 역시 여러 가지 방법이 많다. 내가 탐탁하게 여기지 않아서 가르쳐 주지 않는다면 그것 역시 하나의 교육 방법일 따름이다. 그렇게 거절함으로써 당자를 격하게 하여 반성하게 하고, 또는 분발하도록 하는 것 역시 가르쳐 주는 방법의 하나가 될 것이라는 뜻. -맹자 
개나 고양이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처럼 꾸짖으면서 준다면 길가는 사람이라도 받기를 꺼릴 것이다. 발로 차는 것처럼 준다면 거지일지라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진심으로 베푸는 것이 아니라면 아무 은혜라 할 수 없는 것이다. -맹자 
거처는 마음을 변화시키고, 수양은 몸을 변화시킨다. -맹자 
걱정, 근심 속에 살아온 세상을 즐겁고 편안한 마음으로 떠난다. -맹자 
고국(故國), 즉 유서있는 오래된 나라라는 것은 연륜이 거듭된 큰 나무가 우거져 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이 아니다. 고국이라는 것은 세신(世臣), 즉 대대로 이어져 오는 훌륭한 가신(家臣)이 갖추어져 모여 있는 나라를 말하는 것이다. -맹자 
고기도 맛이 있는 것이고 곰의 발바닥도 맛이 있는 것이다. 고기도 먹고 싶고 곰의 발바닥도 먹고 싶다. 그러나 이 두 개를 얻지 못할 경우에는 고기보다는 더 맛이 있는 곰의 발바닥을 취하겠다. 즉 삶도 의(義)도 내가 원하는 것이다. 그것이 두 개를 겸할 수 없는 경우에는 나는 삶을 버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의(義)를 지키겠다. -맹자 
고립된 신하나 첩에서 난 서자는 혜택받지 못한 까닭에 항상 전전긍긍하고 조심해서 어떤 우환이 닥칠까 깊이 걱정하고 있다. 그래서 항상 언행을 조심하기 때문에 오히혀 덕과 지혜를 갖추게 된다. -맹자 
공자가 벼슬을 살았을 때 세 가지 형이 있었다. 즉 정도(正道)를 행할 만하다고 보고 벼슬을 산 견행가의 사관, 대우가 예로서 하기 때문에 벼슬을 산 제가(際可)의 사관, 군주가 현량한 인재를 길러 주어서 벼슬을 산 공양(公養)이 사관이다. 공자는 노(魯) 나라 계(季)환(桓)자(子)에게서는 정도를 행할 만한다고 보고 벼슬을 살고, 위(衛) 나라 영공(靈公)에게서는 예(禮)로 받아들여져서 벼슬을 살고, 위 나라 효공(孝公)에게서는 현량한 인재를 길러 주어서 벼슬을 살았다. -맹자 
공자가 <춘추(春秋)>를 쓴 이후, 세상의 난신적자들은 모두 두려워했다. 공자의 <춘추>를 칭송하여 맹자가 한 말. -맹자 
공자는 동산에 올라서 내려다보고 노(魯) 나라가 작다고 여기고, 더 높은 태산(太山)에 올라서 내려다보고 천하는 작다고 했다. -맹자 
공자는 성인으로서 때를 알아서 해 나간 사람이었다. 즉 공자는 완급, 출처, 진퇴 등 모든 것을 그 때를 알아서 해 나가는 성인이라는 말. 백이(伯夷)는 성인으로서 맑았던 사람이고 이윤(伊尹)은 성인으로서 사명을 자임하였던 사람이고 유하혜(柳下惠)는 성인으로서 온화한 기질을 가졌던 사람이었다. -맹자 
과분한 명성이나 평판이 자기의 실력이나 실정보다 이상되는 것을 군자는 오히려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이다. 실력이 없으면서 허명(虛名)을 얻는 것은 삼가야 한다. -맹자 
관리로서 지켜야 할 직분에 있는 자가 그 직무를 행할 수 없는 경우에는 그 직을 떠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맹자 
군자가 취해야 하는 교육 방법에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 때 맞은 비가 많은 화생(化生)시키는 것처럼 자연히 훈화(薰化)시킨다. 둘째, 덕성에 응해 대성(大成)시킨다. 셋째, 재능에 응해 달성시킨다. 넷째, 질문에 응해 그 의심을 풀어준다. 간접적으로 선인의 선(善)을 들려주어서 그것을 배울 마음을 일으키게 한다. -맹자 
군자는 도리에 맞는 것으로 속일 수는 있어도 올바른 길 아닌 것을 가지고는 속이기는 힘든 것이다. -맹자 
군자는 사람을 기르기 위해 있는 것이라 사람을 해치는 행위는 하지 않는다. 토지(土地)는 백성을 기르기 위한 것, 그 토지를 서로 빼앗기 위해 전쟁을 한다는 것은 도리상 모순되는 일이다. -맹자 
군자는 어버이 상(喪)을 당했을 경우에 될 수 있는 대로 비용을 아끼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장례에 비용을 많이 들이면 국가의 재정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 이유를 들어 어버이 상례 비용을 절약할 것은 아니다. -맹자 
군자는 지나가는 곳은 모두 교화(敎化)되며 머물러 있는 곳에서는 백성을 교화시키는 힘은 신(神)과 같다. -맹자 
군자는 항상 수양의 부족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평생토록 근심은 있으나 하루 아침에 일어나는 재난에는 결코 마음을 움직여서 걱정할 것이 없는 것이다. -맹자 
군자의 말은 극히 비근하지만 그 중에 참된 도(道)가 있다. 불하대(不下帶)는 눈앞에 보이는 것의 비유. 옛 사람들은 사람을 대할 때에 띠(帶) 아래에는 눈을 주지 않았다. -맹자 
군주가 백성과 즐거움을 함께 한다면 백성도 또한 그 군주가 즐거운 것을 즐긴다. 이렇게 해서 상하가 마음을 함께 한다면 나라는 잘 다스려지는 것이다. -맹자 
군자에게는 세 가지 낙이 있다. 그러나 천하를 얻어 왕자가 되는 것은 이 세 가지에 들지 않는다. 첫째는 부모가 모두 건강하게 살아 있고 형제가 무고한 것, 둘째는 우러러 하늘을 보고 굽어 땅을 보아도 부끄러울 것이 없는 것, 셋째는 천하의 영재를 얻어 이것을 교육하는 것. -맹자 
그는 부력을 뽐낼 것이다. 나는 거기에 대해 인(仁)으로써 당할 것이고 그는 높은 작위를 뽐낼 것이다. 거기에 대해 나는 의(義)로써 당할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내가 불만족하게 생각한단 말인가. 인의(仁義)의 도(道)에 선(善)하다면 상대가 무엇이든 두려울 것이 없다. 증자(曾子)가 한 말. -맹자 
그는 부모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곤궁한 사람이 갈 곳이 없어하는 것과 같았다. 순(舜) 임금에게 요(堯) 임금이 천자의 자리를 물려주려고 했다. 그러나 부모가 기뻐하지 않을 것이라 하여 이렇게 슬퍼했다고 한다. -맹자 
그는 의리에도 맞지 않고 도리에 벗어난 방법이라면 천하를 녹(祿)으로 주어도 돌아보지도 않았다. 이윤(伊尹)을 평한 맹자의 말. -맹자 
그대에게서 나온 것은 그대에게로 돌아간다. -맹자 
그 때는 그때고 이 때에는 이 때, 때에 따라서 가장 적당한 도(道)를 지킨다. 이 말은 잘못하면 오해되어서 변명의 말에 쓰이기 쉽다. 맹자의 진의(眞儀)는 시세(時勢)의 변천에 따라서 진퇴의 길에 다름이 있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맹자 
그도 일개의 남자다. 나도 일개의 남자다. 내가 무엇 때문에 그를 두려워할 것이냐. 누구에게나 바른 길은 하나뿐이다. 용자(勇者) 성간(成간)이 제(齊) 나라 경공(景公)에게 한 말. -맹자 
그런 짓을 하는 것은 풍부(馮婦)가 한 것과 같은 것이다. 풍부는 진나라 사람으로 주먹으로 호랑이를 때려잡고 그 용맹을 뽐냈다. 민중은 칭찬을 보냈으나 뜻있는 사람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비웃었다. -맹자 
그 사람의 말을 듣고 그 사람의 눈동자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가 있다. 그 사람이 어떻게 해서 자기를 숨길 수가 있단 말인가. -맹자 
근심에 살며, 안락에 죽는다. -맹자 
길은 가까이에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헛되이 먼 곳을 찾고 있다. 일은 해보면 쉬운 것이다. 시작을 하지 않고 미리 어렵게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들을 놓쳐 버리는 것이다. -맹자 
참으로 도(道)를 터득한 사람은 그 언동을 좌에서 취하나 우에서 취하나 어떻게 행해도 모두 근본의 도에 일치하는 것이다. 혹은 그 근원을 파악해서 비근한 데까지도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고 풀이하는 사람도 있다. -맹자 
창랑(滄浪)의 물이 말고 깨끗하면 갓끈을 씻고 탁하면 발을 씻는다. 즉 물의 청탁(淸濁)에 따라서 갓끈을 씻을 수도 있고 발을 씻을 수도 있다. 사람은 그 마음씀에 따라서 선한 결과를 얻을 수도 있고, 악한 결과를 얻을 수도 있다. <초사(楚辭)>에서는 어부의 말이라 하고 뜻을 달리 해석해서 치세난세(治世亂世) 각기 그 때에 따라서 출처진퇴를 하라고 말하고 있다. -맹자 
천명(天命)을 아는 자는 높고 위험한 장벽 같은 곳의 아래에는 서지 않는다. 아무 것이나 천명이라 하고 사리 분별없는 짓은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맹자 
천시(天時)는 지리(地利)만 못하고, 지리는 인화(人和)만 못하다. -맹자 
천을 강수(江水)나 한수(漢水)의 깨끗한 물에 빨아 강한 가을 햇볕에 말린 것처럼 깨끗하고 흰 모양은 한 점 흠잡을 데가 없다. 증자(曾子)가 그의 스승 공자의 인격을 찬양한 말. -맹자 
천자 자신은 천하를 남에게 주지는 못한다. 천하는 하늘이 주는 것이다. -맹자 
천재(天災)는 피할 수 있지만 자기 자신이 불러들인 재앙을 피하여 살 수는 없다. -맹자 
천하를 다른 사람에게 주기는 쉬워도 천하를 위해 인물을 얻기는 어렵다. -맹자 
천하를 돌아다니면서 세상을 걱정했다. 유교의 도리를 제후에 널리 펴고 다녔지만, 목적은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건지고 싶은 데 있었다. -맹자 
취할 점이 없는 시골뜨기 말. 제(齊)는 동해 연안에 있는 비속한 나라. 그 동쪽은 더욱더 멀고 보잘것없는 야인들만이 살고 있다. 이런 야인의 말이니 서로 의사가 통할 리 없고 취할 점이 없는 것이다. -맹자 
측은(測隱)한 마음은 인(仁)이라는 대도(大道)의 단서가 된다. 맹자 사단설(四端說)의 제일보. 측은(測隱)은 사람의 불행이나 위험에 대해 가엾게 생각하는 마음. 측(側)은 절실하게 느끼는 것. 은(隱)은 가엾고 불쌍하게 생각하는 것. -맹자 
측은한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옳고 그름의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측은히 여기는 마음은 인(仁)의 시초요,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의(義)의 시초요, 사양하는 마음은 예(禮)의 시초요, 옳고 그르게 여기는 마음은 지(智)의 시초이다. -맹자 
큰 바다를 보는 사람은 황하(黃河)나 양자강(楊子江)에 대해서 그 물이 크다고 말하기가 어렵다. 이처럼 성인의 문에서 배워서 그 도의 큼을 깨달은 자에 대해서는 다른 어떤 훌륭한 언설도 아무 뜻이 없는 것이다. 성인은 이처럼 위대한 것이다. -맹자 
큰 인물일수록 어린 아이의 순진성을 지니고 있다. -맹자 
큰 효도는 죽을 때까지 부모를 따른다. 사람이란 어려서는 부모를 따르고 잘생긴 여자를 알게 되면 젊은 미녀를 따르고 처자가 생기면 처자를 따르고 벼슬을 하면 임금을 따르고, 혹은 부귀를 따르게 되는 제각기의 따르는 곳이 있다. 그러나 순임금은 몇 살이 되어도 부모를 생각하고 부모를 즐겁게 해 주는 것을 오로지 했다. -맹자 
패자(覇者)가 다스리는 백성은 생활에 고생하는 일이 없어 항상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왕도(王道)로써 다스린 백성은 마치 초목이 햇빛의 은혜를 잊은 것처럼 제력(帝力)이 내게 무슨 상관이냐 하고 여유만만하게 살고 있다. -맹자 
풍년에는 젊은이들이 대체로 선량하고 흉년에는 포악하다. 이것은 사람의 재성(才性)이 이렇게 다른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유인하게 할 원인이 있어서 그렇게 된 것이다. -맹자 
하(夏) 나라 걸왕, 은(殷) 나라 주왕이 천하를 잃고 망한 것은 백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즉 민심을 잃으면 천하를 잃게 되는 것이다. -맹자 
하늘과 땅에 한 점 부끄러운 점이 없는 넓고 풍요로운 기(氣). -맹자 
하늘은 우리 백성들을 통해서 보고 하늘이 듣는 것은 우리 백성들을 통해서 듣는다. -맹자 
하늘의 기회는 견고한 요새에 미치지 못하고, 견고한 요새도 사람의 화합에는 미치지 못한다. -맹자 
하늘의 때를 얻었다고 해도 지리(地利)가 없으면 성취할 수 없다. 또 지리를 얻어도 인화(人和)가 없으면 성공하지 못한다. 즉 때를 얻는 것과 지리를 얻는 것보다는 인화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 -맹자 
하늘의 도리에 순종하는 사람은 흥하고 거역하는 자는 망한다. -맹자 
하늘이 내리는 재난은 피해야 하고 스스로 초래한 재난은 피하지 말라. -맹자 
하늘이 어떤 사람에게 대임(大任)을 맡기려고 할 때는 반드시 먼저 마음을 괴롭힌다. -맹자 
하(夏), 은(殷), 주(周)의 삼 대가 천하를 얻은 것은 우(憂), 탕(湯), 문(文), 무(武)의 여러 왕이 어진 정치를 했기 때문이고, 그 삼 대가 천하를 잃은 것은 걸(桀), 주(紂), 유(幽), 여(여) 등 여러 왕이 불인(不仁)을 행했기 때문이다. -맹자 
학문의 길이란 딴 것이 없다. 단지 잃어버린 본래의 양심을 구하는 것뿐이다. -맹자 
한 자를 굽혀 여덟 자를 바르게 한다. 즉 작은 욕은 돌아보지 아니하고 큰 일을 한다는 뜻으로, 소절(小節)은 굽혀도 대도(大道)를 얻으면 되지 않겠는가. 옛 기록에 있는 말. 맹자는 이 말의 공리성(功利性)을 지적하여 이런 생각에 반대하고 있다. -맹자 
향원(鄕原), 즉 겉만은 군자인 척하고 행동은 그에 반하는 사이비인 자는 덕을 해치는 적이다. 공자가 한 말. 향원(鄕原)은 시골에서 견식이 없는 사람들로부터 인격자라고 신뢰받고 있는 실이 없는 사이비 군자. -맹자 
활을 쏘아도 그 때가 올 때까지 발사하지 않는다. 그처럼 사람을 가르치는 데 있어서도 함부로 모든 것을 다 가르치려 하지 말고 배우는 자가 스스로 얻도록 인도하여 그 때를 기다려야 한다. -맹자 
흉년을 탓하지 마라. 백성이 굶주리는 것을 올해는 흉년이 들어서 그렇다고 핑계를 대지 말고, 왕(王) 자신의 책임으로 하고 정치를 해 간다면 천하의 백성은 기꺼이 왕 앞으로 모여들 것이다. -맹자 
흘러가는 물을 손으로 쳐서 뛰어오르게 해서 사람의 이마를 넘어가게 할 수 있고 아래쪽을 막으면 역류하여 산 위로도 갈 수도 있다. 물의 본성은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이지만 그것을 거스르면 이렇게도 되는 것이다. 사람도 본성은 선(善)이지만 물욕에 눈이 멀고 이해에 미혹되면 여러 악한 짓을 하게 된다. -맹자 
힘으로서 사람을 복종시키지 말고, 덕으로서 사람을 복종시켜라 -맹자 
나는 하늘이 낸 백성 중에 먼저 깨달은 자다. 이윤(伊尹)이 자기에게 부관된 하늘의 사명을 자각해서 한 말. -맹자 
나라 안에서 법가(法家), 즉 법도를 지키는 세신(世臣)이나 필사(拂士), 즉 보필할 어진 선비가 없고 나라 밖에서 대항할 적국의 외환(外患)이 없는 나라는 망하기 쉽게 된다. 즉 스스로 훈계하는 것을 잊고 평안에 흐르게 되면 교만하고 사치하고 유약해지기 때문이다. -맹자 
나무 위에서 물고기를 구한다.(연목구어, 緣木求魚) -맹자 
나아가는 것이 빠른 자는 물러가는 것도 또한 빠르다. 일시로 힘을 너무 내게 되면 그 힘은 빨리 쇠퇴하는 것이다. -맹자 
나이가 많은 것을 개재시키지 않고, 존귀한 세도를 게재시키지 않고 형제의 힘을 개재시키지 않고 벗을 사귀는 것이 진정한 교우의 길이다. 벗을 사귀는 것이란 그 사람의 덕을 벗으로 사귀는 것이니 그 사이에 개재시키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 -맹자 
남의 좋지 않은 일을 말하면 거기에 따라올 후환을 어떻게 할 것인가. 남의 좋지 않은 말은 할 것이 아니다. 반드시 원망을 듣게 되고 재환(災患)이 자기에게 돌아온다. -맹자 
남편이라는 것은 아내에게서 보면 하늘처럼 우러러 바라보며 평생을 살 사람이다. 그러기 때문에 남편은 존경받을 만한 존재라야 한다. -맹자 
내가 나가고 물러나고 하는데 어찌 여유가 있지 않겠는가. 내가 듣기로는 벼슬자리에 있는 자는 그 직책을 지켜내지 못하면 그 자리에서 물러나야 하고, 말할 책임이 있는 자는 자기의 말이 받아들여지지 못하면 그 자리에서 물러나야 하는 것이다. 나는 벼슬자리도 없고 말할 책임도 없으니 나가고 물러나는 것이 모두 자유스럽다. 이 말은 사람은 바른 길을 지키고 있으면 자기의 태도에 여유가 있다는 말로 쓰인다. -맹자 
내가 이번에 출사하여 선정을 베풀어 백성을 요순의 백성처럼 만들 것이다. 이윤(伊尹)이 처음엔 탕왕(湯王)의 초빙을 물리쳤으나 세 번의 초청에 응해 그의 뜻을 바꿔서 이렇게 결의한 것이다. -맹자 
너는 너고 나는 나다. 뜻이 높은 자는 시속에 따라 흔들리지 않는다. 가령 네가 내 옆에 있어 예가 아닌 태도를 취해도 나의 청백은 더럽힐 수가 없을 것이다. 유하혜(柳下惠)의 태도를 평한 맹자의 말. -맹자 
너에게서 나온 것은 너에게로 돌아간다. -맹자 
널리 배워서 상세하게 풀어나가는 것은 그것을 바탕으로 근본으로 되돌아가서 그 요점을 전하고자 함이다. 즉 박학다식을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학문을 실제로 유용하게 쓰기 위함이다. -맹자 
네가 한 언행은 너에게로 돌아간다. 즉 선에는 선이 돌아가고 악에는 악이 돌아간다. 증자(曾子)가 한 말. -맹자 
노(魯) 나라 대부(大夫) 유하혜(柳下惠)는 삼공의 지위를 얻어도 또 잃어도 그것 때문에 자기의 지조를 바꾼 적이 없었다. -맹자 
높은 것을 만들고자 한다면 언덕을 이용하는 것이 좋고, 낮은 것을 만들고자 한다면 냇물이나 못을 이용하면 좋다. 정치도 이처럼 선왕(先王)의 도(道)를 따라서 하는 것이 좋다. -맹자 
누구나 천리에 순응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용납할 수 있지만, 천리에 거스르는 사람은 제 몸을 멸하고 마느니라. -맹자 
눈이 어질어질한 강한 약이 아니면 그 병은 나을 수가 없다. 충성스런 말도 듣는 사람에게 강하게 하지 않으면 효과가 없는 것이다. 서경(書經)에 있는 말. -맹자 
늘 재산이 없는 이는 늘 마음이 없다. -맹자 
다른 나라 백성이 징벌하러 온 왕의 군대를 맛있는 음식을 가지고 와서 진심으로 환영하는 것, 그것은 정벌되는 나라의 백성들이 자기 나라의 학정에서 해방되었다는 기쁨을 나타낸 것이다. 이럴 때만 외정(外征)은 정의의 군으로서 허락되는 것이다. -맹자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취하여 그 선을 자기도 행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다. 대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선을 흉보지만 순(舜)은 다른 사람의 선을 자기의 선으로 하는 큼이 있었다. -맹자 
단 하나라도 의(義) 아닌 일을 하거나 단 한 사람이라도 죄 없는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해서 천하를 얻는 일은 옛 성인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옛 성인은 백이(伯夷), 숙제(叔齊), 이윤(伊尹), 공자(孔子)를 지칭한다. -맹자 
대인(大人)은 말을 한다고 반드시 그 신용을 지키지는 않는다. 행동한다고 반드시 처음 목표했던 데까지 해내지 않는다. 오직 의(義)가 있는 곳에 따라 갈 뿐이다. -맹자 
덕으로써 사람을 복종시키는 왕자(王者)에게는 모두 마음속으로 기꺼이 복종하는 것이다. 힘으로 사람을 복종시키는 것은 마음으로 복종하는 것이 아니고 힘이 모자라서 할 수 없이 복종하는 것이다. -맹자 
덕으로써 인정(仁政)을 하는 자, 즉 왕도(王道)를 행하는 자가 진정한 왕자다. 무력이나 권력으로 천하를 빼앗고 표면만 인자(仁者)를 가장하는 자를 패자(覇者)라 한다. -맹자 
도(道)는 손 가까운 일상 생활에 있는 것이다. 사람은 먼 곳에서 구하려 한다. 즉 어버이를 섬기고 어른을 존경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다. 또 도덕은 인정에 근본을 둔 극히 쉬운 것인데 사람은 특별히 어려운 것이라 생각하고 그것을 구하려 한다. 이런 것은 모두가 잘못된 것이다. -맹자 
도(道)를 잃게 되면 도와 주는 자도 적어진다. 친척이라도 멀리하여 가까이하지 않는다. -맹자 
도목수가 제자를 가르칠 때에는 반드시 그림쇠(원을 그리는 콤파스)와 곡척ㄱ자 모양으로 된 자)의 사용법부터 시작한다. 학문을 배우는 경우에도 반드시 성인을 표준으로 해야 한다. -맹자 
도목수는 졸렬한 제자 목수를 위해서 먹줄과 먹표가 쓰기가 어렵다고 해서 먹줄의 정한 법을 고치고 없애고 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군자의 도(道)는 소인에 있어 고상해서 실행하기 어려울지 모르겠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 기준을 낮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맹자 
띠(茅 모, 포아풀과의 다년초)로 자네의 마음을 막고 있다. 산길은 사람이 다니게 되면 길이 되는데 잠시 동안 다니지 않으면 띠로 막혀 버리게 된다. 길을 띠가 막는 것처럼 사념이 자네의 본심을 막고 있다고 제자인 고자(高子)에게 맹자가 한 말. -맹자 
마치 먹이를 주어 고기를 모아 그물로써 잡는 것처럼 백성이 죄를 짓도록 해 놓고 죄를 지으면 형벌을 주는 일 같은 것이 아니다. -맹자 
만일 위에 있는 사람도 아래에 있는 사람도 모두가 제각기 자기의 이익만 생각하고 행동하게 된다면 그 나라는 위태롭게 된다. 정(征)은 취하는 것. -맹자 
말이나 의론으로써 "이런 일은 선이니 행하여라" 해 보아도 그것으로 사람을 심복시킬 수가 있는 것이 아니다. 실지로 선행을 쌓고 선정을 해서 충분히 사람을 교화시킴으로써 비로소 사람은 심복하는 것이다. -맹자 
말이 쉬운 것은 결국은 그 말에 대한 책임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맹자 
말하는 상대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또한 그 사람의 눈을 잘 지켜보면 그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아무리 수단을 써도 말할 때만큼은 자신의 성격을 숨길 수 없기 때문이다. -맹자 
맹자는 사십 세가 되어서 마음의 동요가 없었다. 논어에서는 공자가 사십이불혹(四餓不惑)이라 했다. -맹자 
먼저 할 일을 뒤로 미루고 중요한 일을 가볍게 다룬다. 그런 것을 일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다. -맹자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큰 나라도 사양할 수 있다. 진정 명예를 존중하는 사람이 아니면 한 그릇의 밥과 한 그릇의 국에도 침을 꿀떡 삼키는 탐욕의 빛을 얼굴에 나타낸다. 명예란 일종의 양심이다. 명예를 존중하는 사람은 결코 양심에 꺼리는 일을 하지 않는다. 권력이나 세력이나 부에 대한 욕심 때문에 결코 양심을 저버리지 않는다. -맹자 
명예심이 강한 사람은 그 명예를 얻기 위해 천승(千乘)의 병거(兵車)를 지닐 수 있을 정도의 대국(大國)도 양도하고 아까운 줄 모르게 된다. 물론 그것은 진실로 욕심이 없어서 그러는 것은 아니다. -맹자 
모두들 책을 믿는다면, 책이 없는 것만 못하다. -맹자 
물러나서 조용하게 구하면 배울 수 있는 스승은 많다. 사람은 가는 곳마다 보는 것마다 모두 스승으로서 배울 것이 많은 법이다. -맹자 
물은 그 근원에서 졸졸 솟아 밤낮 없이 흘러서 파인 웅덩이가 있으면 채우고 후에 넘쳐 흘러서 바다까지 흘러간다. 마치 근본을 속으로 기른 뒤에 활동하는 사람의 모습과 같다. -맹자 
물이 지나치게 맑으면 사는 고기가 없고, 사람이 지나치게 비판적이면 사귀는 벗이 없다. -맹자 
배우지 않고도 타고난 능력을 양능(良能)이라 하고 생각하지 않아도 잘 알고 타고난 지능을 양지(良知)라 한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이 양지 양능을 지니고 있다. -맹자 
백성을 몹시 가혹하게 다스리는 학정을 하여 그 비용으로 자기의 생활만 풍족하게 한다. 송(宋) 나라 학자 진상이 등문공(등文公)을 평한 말. -맹자 
백성을 살리기 위한 방도를 쓰다가 우연한 결과로 백성을 죽이는 일이 생긴다 해도, 백성은 비록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 죽인 자를 원망하지 않는다. -맹자 
백성을 안정한 생활을 시키기 위한 방도로써 백성을 쓴다면 가령 아무리 백성에게 고된 노력을 시켜도 백성은 원망하지 않는 것이다. -맹자 
백성이 각각 그 생활에 안심하고 죽은 가족의 장례를 충분히 치를 수 있는 유감 없는 생활 상태를 만들어 줄 수 있는 이런 일이 왕도(王道)정치의 제일보(第一步)다. -맹자 
백성이 있은 후에 국가가 있고 국가가 있음으로써 다스리는 군주가 있다. 따라서 백성이 가장 귀중한 존재가 되고 그 다음이 국가가 되는 것이다. -맹자 
벼슬을 사는 것은 의식을 얻기 위해서 하는 짓이 아니다. 그러나 때에 따라서는 부모를 봉양한다거나 가정을 위해서와 같은 때 가난을 면하기 위해 벼슬을 할 때도 있다. -맹자 
별것도 아닌 데도 뜻하지 않은 영예를 얻을 수도 있고 만전을 기해서 했는데도 뜻하지 않은 비방을 듣는 수도 있다. 영예와 비방은 반드시 그 실체와는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것에 너무 마음을 쓴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맹자 
봄이 되어서 꾀꼬리가 깊은 골에서 나와서 서울 가까운 곳에 있는 높은 나무에 앉는다. 비천한 처지에서 고귀하게 출세하는 것을 말한다. -맹자 
부귀도 그의 마음을 혼란시켜 타락시키지 못하고 빈천함도 그의 의로운 뜻을 변하게 하지 못하고, 어떤 위력이나 무력도 그를 굴복시키지 못하는 이런 사람을 대장부라고 하는 것이다. -맹자 
부자 사이에는 친애를 근본으로 하고(부자유친, 父子有親), 군신의 관계는 의리를 근본으로 하고(군신유의, 君臣有義), 부부 사이에는 예를 근본으로 하고(부부유별, 夫婦有別), 장유 사이에는 질서를 근본으로 하고(장유유서, 長幼有序), 붕우 사이에는 신의를 근본으로 행야 한다(붕우유신, 朋友有信). -맹자 
불효에 세 가지가 있다. 그 중에 자식이 없어 대를 이어나가지 못하는 것이 불효 중에서 가장 큰 것이다. 삼불효(三不孝) 중에 남은 두 가지는 확실한 설명이 없으나 선인들의 설에 의하면, 어버이를 불의(不義)에 빠뜨리게 하는 것을 불효라 하고 또 빈궁해서 늙은 어버이를 봉양하지 못하는 것도 불효라 했다. -맹자 
비록 지혜가 있다고 해도 시세(時勢)를 타는 것만 못하다. 왕업(王業)을 성취하는 데에는 지혜만 가지고서는 안 된다. 이것을 성취시킬 시세가 필요한 것이다. -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