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
가난하고 눈먼 한 소녀를 위해 즉흥적으로 '월광곡'을 작곡했다는 베토벤, 그는 1770년 독일 서부의 도시 본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가 궁정 지휘자였기 때문에 베토벤도 모차르트처럼 어릴 때부터 아버지한테서 음악 을 배웠다. |
베토벤의 집안은 풍족하지 못하였다. 지나치게 술을 좋아한 그이 아버지는아들 베토벤을 모차르트처럼 키워보려는 욕심으로 음악 교육을 엄하게 시켰다. 방문을 걸어 짐그고는 몇 시간이라도 계속해서 피아노를 치게 했다. |
4세 때부터 아버지로 부터 건반 악기를 배운 베토벤이 7세 때쯤 에는 벌써 대중들 앞에서 연주 할 수 있을 만큼 숙련 되었다.그는 13세때 벌써 궁정 극장 오르간 연주자가 되어 아버지 뜻대로 가계를 돕기 시작했다. |
베토벤은 4년 후인 17세때 오스트리아의 빈으로 가서 처음으로 모차르트를 만났다. 그는 이때 피아노 를 멋지게 연주하여 모차르트로 하여금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
그러나 베토벤은 그의 어머니의 병때문에 다시 본으로 돌아왔다. 귀행 직후 어머니는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런 속에서 그의 아버지는 날마다 술로써 세월을 보냈고, 베토벤이 두 어린 동생을 돌보며 생계를 꾸려 가야 했다. |
베토벤은 자신의 기구한 운명을 저주했다. 그는 매사에 비웃음을 보냈고, 점점 침울해졌다. 불같은 성격과 거친 말 버릇 때문에 극장 연주자들은 물론 주위 사람들로 부터 곧잘 '미친녀석'이란 소리를 들었다. |
베토벤은 22세때 다시 빈으로 갔다. 그는 여기서 마침내 피아니스트로 인정을 받았고 인기도 얻었다. 그이의 피아노 기교는 열렬한 음악 애호가인 칼 리히노프스키 공작을 매료시켰다. 공작 부처는 베토벤을 자기 저택으로 초대, 1년에 600프로린(당시 약 300달러)의 연금을 주고, 사교 클럽들에도 소개했다. 베토벤은 화려한 옷을 입고 호사스런 마차를 타면서 최고의 찬사와 경의를 한몸에 받았다. |
베토벤의 나이 20대 후반, 그는 이런 생활에 곧 현기증을 냈다. "내가 이 세상에 온것은 안락한 삶을 즐기기 위함이 아니라 위대한 일을 성취 하기 위함이다. " 폭발적이고 거만하게 보이는 베토벤의 천성적인 기질은, 그로 하여금 모든 사교계로 부터 발을 끊게 했다. 이때부터 그는 우울증 환자처럼 은둔 생활에 들어 갔다. |
어느날 한 숙녀가 베토벤에게 모차르트의 오페라를 보러 가자고 청했다. "싫소."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자신의 독창성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도 다른 사람의 음악을 듣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
베토벤은 늘 친구들에게 "언젠가는 뭔가를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터무니없는 소리." 친구들은 그의 맑은 얼굴과 땅딸하고 촌스런 모습을 바라보며 그저 웃을 뿐이었다. |
첫번째'교향곡'이 나온 것은 그의 나이 30세 되던 1800년. 비평가들은 "자신을 천재로 착각하는 시골뜨기"라며 입을 모아 비웃었다. 제 2교향곡이 나오자 비평가들은 또 말했다."만약 베토벤이 이따위 장난질을 계속한다면 우리의 오케스트라는 악기들의 싸움터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라고. |
베토벤은 이들의 비평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는 "파리 몇 마리가 날아든다고 해서 나의 달리는 준마를 멈추게 할 수는 없다." 고 했다. 자신의 천재성을 두고 남들이 이러쿵 저러쿵 하는 것을 가장 못마땅히 생각하면서 자신의 일만을 굳건히 계속했다. |
베토벤은 '교향곡 제 1번'을 완성하기 바로 직전부터 음악가로서는 가장 소중한 귀가 점점 들리지 않게 되어 갔다. 그에게는 귀를 먹는 다는 것이 고통스러움 이상이었다. 고쳐 보려고 애를 썼지만 귓병은 점점 더했다. 한때 자살 할 생각까지 했으나 끝내 그는 운명과 싸워 이겼고, 그의 불굴의영혼은 더욱 훌륭한 음악을 탄생시켜갔다. |
메토멘의 시대는 한마디로 나폴레옹의 시대. 베토벤은 나폴레옹을 인류의 구세주로 생각, 그를 뜨겁게 숭배했다. 그는 자기의 교향곡 제3번을 나폴레옹에게 바치기로 했다. 베토벤은 그 작품을 파리의 나폴레옹에게 보내려고 할 즈음, 나폴레옹이 스스로 황제임을 선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슬그머니 화가 난 베토벤은 배신감 같은 것을 느끼고 헌납하려던 그 곡의 편지를 찢어 버렸다. 그는 소리쳤다."나폴레옹도 한낱 평범한 인간에 지나진 않는다. 그 역시 인간을 짓밟는 다른 폭군들과 다를 바 없다." 그는 교향곡 제 3번을 '에로이카'로 개명했다. 이후 베토벤은 나폴레옹과 그 병사들을 행해 늘 상을 찌푸렸다. 그들이 연주를 청하면 단호하게 거절했다. |
연주를 해주든가, 아니면 전쟁 포로가 되든가 하시오.라는 그들의 협박에 베토벤은 빗속을 뚫고 3마일이나 걸어서 도망 치듯 다른 마을로 갔다는 일화가 있다. |
베토벤의 생애에서 커다란 사건중의 하나는 독일의 문호 괴테와의 만남이었다. 테플리츠 보헤미안 온천에서 였다. 음악의 시인과 언어의 시인이 사귀게 된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베토벤 42세, 괴테 63세. 이미 고령에 접어든 괴테는 젊은 동료 예술가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
한번은 베토벤이 괴테와 나란히 거리를 걷다가 오스트리아 황후의 일행을 만났다. 괴테는 옆으로 비켜서서 모자를 벗고 정중히 절을 했으나, 베토벤은 모자를 쓴 채 팔짱을 끼고 그 무리 속을 유유히 지나쳤다. 괴테는 "버릇없고 무례한, 전혀 길들여지지 않은 개성"이라며 분개했다. |
평생 독신으로 지낸 베토벤은 프랑스 혁명 이후 그를 후원하던 귀족들이 몰락하자 더욱 쓸쓸한 만년을 보냈다. 온갖 병고에 시달리던 그가 임종의 자리에 누운 것은 1827년. 창밖에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 그는 죽어가면서 "여러분 박수를 보내라. 이제 희극은 끝났다."는 말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57세였다. 역경과 불운에 맞서 이긴 위대한 예술가 베토벤은 지금 빈의 중앙 묘지에 잠들어 있다. |
(출처 : '베토벤' - 네이버 지식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