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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2000 머털도사 2007. 9. 10. 03:03
베토벤
가난하고 눈먼 한 소녀를 위해 즉흥적으로 '월광곡'을 작곡했다는 베토벤, 그는 1770년 독일 서부의 도시 본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가 궁정 지휘자였기 때문에 베토벤도 모차르트처럼 어릴 때부터 아버지한테서 음악 을 배웠다. 
베토벤의 집안은 풍족하지 못하였다. 지나치게 술을 좋아한 그이 아버지는아들 베토벤을 모차르트처럼 키워보려는 욕심으로 음악 교육을 엄하게 시켰다. 방문을 걸어 짐그고는 몇 시간이라도 계속해서 피아노를 치게 했다. 
4세 때부터 아버지로 부터 건반 악기를 배운 베토벤이 7세 때쯤 에는 벌써 대중들 앞에서 연주 할 수 있을 만큼 숙련 되었다.그는 13세때 벌써 궁정 극장 오르간 연주자가 되어 아버지 뜻대로 가계를 돕기 시작했다. 
베토벤은 4년 후인 17세때 오스트리아의 빈으로 가서 처음으로 모차르트를 만났다. 그는 이때 피아노 를 멋지게 연주하여 모차르트로 하여금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베토벤은 그의 어머니의 병때문에 다시 본으로 돌아왔다. 귀행 직후 어머니는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런 속에서 그의 아버지는 날마다 술로써 세월을 보냈고, 베토벤이 두 어린 동생을 돌보며 생계를 꾸려 가야 했다. 
베토벤은 자신의 기구한 운명을 저주했다. 그는 매사에 비웃음을 보냈고, 점점 침울해졌다. 불같은 성격과 거친 말 버릇 때문에 극장 연주자들은 물론 주위 사람들로 부터 곧잘 '미친녀석'이란 소리를 들었다. 
베토벤은 22세때 다시 빈으로 갔다. 그는 여기서 마침내 피아니스트로 인정을 받았고 인기도 얻었다. 그이의 피아노 기교는 열렬한 음악 애호가인 칼 리히노프스키 공작을 매료시켰다. 공작 부처는 베토벤을 자기 저택으로 초대, 1년에 600프로린(당시 약 300달러)의 연금을 주고, 사교 클럽들에도 소개했다. 베토벤은 화려한 옷을 입고 호사스런 마차를 타면서 최고의 찬사와 경의를 한몸에 받았다.
베토벤의 나이 20대 후반, 그는 이런 생활에 곧 현기증을 냈다. "내가 이 세상에 온것은 안락한 삶을 즐기기 위함이 아니라 위대한 일을 성취 하기 위함이다. " 폭발적이고 거만하게 보이는 베토벤의 천성적인 기질은, 그로 하여금 모든 사교계로 부터 발을 끊게 했다. 이때부터 그는 우울증 환자처럼 은둔 생활에 들어 갔다. 
어느날 한 숙녀가 베토벤에게 모차르트의 오페라를 보러 가자고 청했다. "싫소."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자신의 독창성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도 다른 사람의 음악을 듣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베토벤은 늘 친구들에게 "언젠가는 뭔가를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터무니없는 소리." 친구들은 그의 맑은 얼굴과 땅딸하고 촌스런 모습을 바라보며 그저 웃을 뿐이었다. 
첫번째'교향곡'이 나온 것은 그의 나이 30세 되던 1800년. 비평가들은 "자신을 천재로 착각하는 시골뜨기"라며 입을 모아 비웃었다. 제 2교향곡이 나오자 비평가들은 또 말했다."만약 베토벤이 이따위 장난질을 계속한다면 우리의 오케스트라는 악기들의 싸움터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라고. 
베토벤은 이들의 비평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는 "파리 몇 마리가 날아든다고 해서 나의 달리는 준마를 멈추게 할 수는 없다." 고 했다. 자신의 천재성을 두고 남들이 이러쿵 저러쿵 하는 것을 가장 못마땅히 생각하면서 자신의 일만을 굳건히 계속했다. 
베토벤은 '교향곡 제 1번'을 완성하기 바로 직전부터 음악가로서는 가장 소중한 귀가 점점 들리지 않게 되어 갔다. 그에게는 귀를 먹는 다는 것이 고통스러움 이상이었다. 고쳐 보려고 애를 썼지만 귓병은 점점 더했다. 한때 자살 할 생각까지 했으나 끝내 그는 운명과 싸워 이겼고, 그의 불굴의영혼은 더욱 훌륭한 음악을 탄생시켜갔다. 
메토멘의 시대는 한마디로 나폴레옹의 시대. 베토벤은 나폴레옹을 인류의 구세주로 생각, 그를 뜨겁게 숭배했다. 그는 자기의 교향곡 제3번을 나폴레옹에게 바치기로 했다. 베토벤은 그 작품을 파리의 나폴레옹에게 보내려고 할 즈음, 나폴레옹이 스스로 황제임을 선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슬그머니 화가 난 베토벤은 배신감 같은 것을 느끼고 헌납하려던 그 곡의 편지를 찢어 버렸다. 그는 소리쳤다."나폴레옹도 한낱 평범한 인간에 지나진 않는다. 그 역시 인간을 짓밟는 다른 폭군들과 다를 바 없다." 그는 교향곡 제 3번을 '에로이카'로 개명했다. 이후 베토벤은 나폴레옹과 그 병사들을 행해 늘 상을 찌푸렸다. 그들이 연주를 청하면 단호하게 거절했다. 
연주를 해주든가, 아니면 전쟁 포로가 되든가 하시오.라는 그들의 협박에 베토벤은 빗속을 뚫고 3마일이나 걸어서 도망 치듯 다른 마을로 갔다는 일화가 있다. 
베토벤의 생애에서 커다란 사건중의 하나는 독일의 문호 괴테와의 만남이었다. 테플리츠 보헤미안 온천에서 였다. 음악의 시인과 언어의 시인이 사귀게 된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베토벤 42세, 괴테 63세. 이미 고령에 접어든 괴테는 젊은 동료 예술가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한번은 베토벤이 괴테와 나란히 거리를 걷다가 오스트리아 황후의 일행을 만났다. 괴테는 옆으로 비켜서서 모자를 벗고 정중히 절을 했으나, 베토벤은 모자를 쓴 채 팔짱을 끼고 그 무리 속을 유유히 지나쳤다. 괴테는 "버릇없고 무례한, 전혀 길들여지지 않은 개성"이라며 분개했다. 
평생 독신으로 지낸 베토벤은 프랑스 혁명 이후 그를 후원하던 귀족들이 몰락하자 더욱 쓸쓸한 만년을 보냈다. 온갖 병고에 시달리던 그가 임종의 자리에 누운 것은 1827년. 창밖에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 그는 죽어가면서 "여러분 박수를 보내라. 이제 희극은 끝났다."는 말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57세였다. 역경과 불운에 맞서 이긴 위대한 예술가 베토벤은 지금 빈의 중앙 묘지에 잠들어 있다. 
(출처 : '베토벤' - 네이버 지식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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